2010. 5. 31. 18:04 Archi-tour_Overseas/Paris(2009)

면적 23ha. 루이13세의 섭정 모후() 마리드메디시스를 위하여, 1615년부터 건축된 뤽상부르 궁전에 딸린 프랑스식 정원으로, 화단과 연못이 아름답고 역대의 왕비, 저명한 예술가들의 조각이 많아 파리에서 유명한 공원이다. 카르티에라탱(학생가)과 인접하여 학생 ·어린이 동반 가족의 휴식장소이며, 작은 인형극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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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소르본대학과 판테온사원이 있어서인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낮시간에 다다르니 공원으로 너도나도 몰려들어서 "이 곳이 정말 프랑스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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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았는데 이 아줌마가 확 분위기를 깼다. 애기 데리고 담배라~~~이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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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611, Marie de Medicis, the widow of King Henry IV and the regent for the King Louis XIII, decided to build a palace in imitation of the Pitti Palace in her native Florence. She purchased the hotel du Luxembourg (today the Petit-Luxembourg palace) and began construction of the new palace. She commissioned Salomon de Brosse to build the palace and a fountain, which still exists. In 1612 she planted 2,000 elm trees, and directed a series of gardeners, most notably Tommaso Francini, to build a park in the style she had known as a child in Florence.[1] Francini planned two terraces with balustrades and parterres laid out along the axis of the chateau, aligned around a circular basin. He also built the Medici Fountain to the east of the palace as a nympheum, an artificial grotto and fountain, without its present pond and statuary. The original garden was just eight hectares in size. In 1630 she bought additional land and enlarged the garden to thirty hectares, and entrusted the work to Jacques Boyceau de la Barauderie, the indendant of the royal gardens of Tuileries and the early garden of Versailles. He was one of the early theorists of the new and more formal garden à la française, and he laid out a series of squares along an east-west alley closed at the east end by the Medici Fountain, and a rectangle of parterres with broderies of flowers and hedges in front of the palace. In the center he placed an octagonal basin with a fountain, with a perspective toward what is now the Paris observatory. Later monarchs largely neglected the garden. In 1780, the Comte de Provence, the future Louis XVIII, sold the eastern part of the garden for real estate development. Following the French Revolution, however, the leaders of the French DIrectory expanded the garden to forty hectares by confiscating the land of the neighboring religious order of the Carthusian monks. The architect Jean Chalgrin, the architect of the Arc de Triomphe, took on the task of restoring the garden. He remade the Medici Fountain and laid out a long perspective from the palace to the observatory. He preserved the famous pepiniere, or nursery garden of the Carthusian order, and the old vineyards, and kept the garden in a formal French style. During and after the July Monarchy of 1848, the park became the home of a large population of statues; first the Queens and famous women of France, lined along the terraces; then, in 1880s and 1890s, monuments to writers and artists, a small-scale model by Bartholdi of his Statue of Liberty and one modern sculpture by Zadkine.
In 1865, during the reconstruction of Paris by Louis Napoleon, the rue de l'Abbeé de-Épée, (now rue Auguste-Comte) was extended into the park, cutting off about fifteen hectares, including the old nursery garden. The building of new boulevards also required moving and rebuilding the Medici Fountain to its present location. During this reconstruction, the director of parks and promenades of Paris, Gabriel Davioud, built new ornamental gates and fences around the park, and polychrome brick garden houses. He also transformed what remained of the old Chartreux nursery garden, at the south end of the park, into an English garden with winding paths, and planted a fruit garden in the southwest corner. He kept the regular geometric pattern of the paths and alleys, but did create one diagonal alley near the Medici fountain which opened a view of the Pantheon. The garden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contained a marionette theater, a music kiosk. greenhouses, an apiary or bee-house; an orangerie also used for displaying sculpture and modern art (used until the 1930s); a rose garden, the fruit orchard, and about seventy works of sculpture.

http://en.wikipedia.org/wiki/Jardin_du_Luxembo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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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31. 17:41 Archi-tour_Overseas/Paris(2009)

라빌레트공원에 도착해서 제대로 된 사진 한컷을 얻지도 못했다. 날씨가 정말 왜 이럴까?
암튼 음악도시의 동관과 서관을 둘러보기 시작했으나, 서관은 내부관람이 힘든상황이었고 결국 동관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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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 Avenue Jean Jaurés, 75019 Paris, France
1984~1990 (West), 1984~1995 (East)
라 빌레트 공원(Parc de La Villette) 남측 진입구에는 파리-市 19번區의 장 조레스-街(Avenue Jean Jaurés)을 전면으로 음악도시(Cité de la Musique)가 위치하고 있으며, 메트로5호선 포르트 드 팡탱-역(Porte de Pantin)에 가깝다.
음악도시는 문화부(ministère de la culture) 산하의 공기업(Établissement public à caractère industriel et commercial/EPIC) 중 하나이며, 미테랑 프랑스 전대통령의 그랑 프로제(Grand Projects) 중 하나로 개발되어 연면적 40,000㎡의 서관이 1990년 그리고 비슷한 규모로 동관이 1995년에 개관하여 현재 운영 중이다. 서관에는 음악학교(the conservatory of music)가 운영 중이며, 동관은 원형극장(amphitheater), 800~1,000석의 음악당(concert hall), 15세기~10세기의 고전음악악기 (classical music instruments)를 소장하고 있는 음악박물관(museum of music), 공연연습장(rehearsal rooms)과 시설관리국(administrative offices) 등 공공시설(public spaces)이 복합되어 있다. 그 밖에도 전시실, 워크숍(workshops)과 중요 음악사 자료실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음악도시는 시티-플레옐(City-Pleyel)이라는 자회사를 통해 파리의 유명한 살에 플레옐-공연장(Salle Pleyel)을 직접 운영하고 있으며, 대지에 인접하여 지어질 파리 필하모니(Philharmonie de Paris) 전용극장도 함께 관리할 예정이다.
음악도시는 프랑스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Christian de Portzamparc / 1944~)에 의해 설계되었다. 공공에 개방된 공간이면서 음악학교 학생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하여야 한다는 설계조건을 고려하여 그는 라 빌레트 공원의 중앙 진입부에 거대한 광장과 분수를 배치하고 음악도시의 시설을 교육시설과 문화시설로 양분하였다. 결과적으로 라 빌레트 공원의 그랑드 알(Grande halle)의 전면광장은 도시와 공원 사이 강한 축을 형성하면서 공공에 개방되어 있다. 또한 이 광장은 음악도시의 서관 음악학교 즉, 학생들의 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고, 동관의 문화시설은 광장, 도로와 공원에 풍부하게 면하도록 세워졌다. 더욱이 두 건축물은 시설용도에 따라 마치 별개로 느껴질 만큼 각각 독특한 외관을 형성하고 있다. 서관(west wing)은 내곡한(incurved) 벽면에 규칙적으로 창문이 뚫린 외관이 길게 장 조레스-街를 따라 면하고 있으며, 벽면 하부의 거울연못에 반영(反影)된다. 그리고 서관 실내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활동에 대응하는 공간을 적정하게 접할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동관(east wing)은 공공시설물의 측면에서 서관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공원으로 개방되어 있으며, 거대한 삼각형 배치를 하고 있다. 구멍 뚫린 치즈 조각이 중앙의 공연장 주변에 모여있고 각 매스(mass) 사이는 골목과 같은 통로로 구성되어 있고, 각 매스에는 음악공연장과 음악박물관, 카페, 안내센터(Information center), 시설관리국, 연구실과 학생기숙사 등의 다양한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참고로 스위스 건축가 베르나르 츄미 (Bernard Tschumi / 1944~)가 설계한 라 빌레트 공원의 파동형의 아케이드 캐노피와 음악도시의 서관 상부의 파동형 지붕은 협업에 의한 의도적인 설계가 아니라 우연의 결과이다.
- 건축설계정보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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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31. 17:39 Archi-tour_Overseas/Paris(2009)

여행 첫날부터 비가 내려서 사진촬영도 문제고 이동도 문제고...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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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Avenue Corentin Cariou, 75019 Paris, France, 1980~1986
과학산업도시(C.S.I / Cité des Sciences et de l'Industrie)는 파리-市 19번區에 있는 라 빌레트 공원(Parc de la Villette)의 북측에 자리잡고 있으며, 공원 남측 라 빌레트 지하철역(Porte de la Villette) 근방에는 건축가 트리스티앙 드 포잠박의 음악도시(Cité de la Musique) 서관과 동관이 진입광장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 라 빌레트 공원의 일부로써, 파리-市의 음악과 무용의 국립교육기관인 음악도시와 더불어 청소년과 아동을 포함하여 폭넓은 연령층를 대상으로 과학과 기술정보를 보급하고, 과학(science), 탐사(research) 그리고 산업(industry) 전반에 도전적인 흥미를 시민들에게 불러일으키기 위한 중요한 문화교육시설이며, 프랑스 과학과 기술의 함양을 위한 과학기술산업센터(Centres de culture scientifique, technique et industrielle / CCSTI)의 중심부이다. 과학산업도시는 과학과 기술문화를 전파하기 위한 공공 교육연구기관으로 지스카르 데스탱 프랑스 전대통령(Valéry Giscard d'Estaing / 1926~) 집권 당시 추진된 사업으로 진행 결과 기존의 도살장 시설(slaughterhouses)을 과학기술 전시관으로 변경(rehabilitation)하는 현상설계가 1980년 공모되었고, 아드리앙 팽실베르(Adrien Fainsilber)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 그리고 6년 후 지오토(Giotto) 탐사선이 핼리-혜성(Comet Halley)과 만났던 해인 1986년, 프랑수아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 전대통령의 주관으로 과학산업도시가 공식 개관되었다.
과학산업도시는 52ha에 달하는 라 빌레트 공원 내 음악도시의 음악박물관을 제외하고 그 외 모든 박물관을 통합 운영하기 위한 프로젝트였으며, 도살장이라는 기존의 부적절한 용도와 불완전한 구조를 관람자들(visiters)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전시관(museum)으로 변경하는 것이 건축가에게 주어진 도전과제였다. 건축가 아드리앙 팽실베르(Adrien Fainsilber)는 이러한 난제에도 불구하고 결국 7년간의 작업 끝에 기존 건축물을 세계 최대의 과학관으로 변경할 수 있었다. 과학관의 외관은 기존 구조형식 그대로를 강조하기 위하여, 20개의 높이 40m 콘크리트 中空 타워를 지반 레벨에서 13m 하부 기초까지 굴토하여 완전히 노출시키고, 타워 상부에는 16개의 65m 스팬(span) 철제 트러스를 외부로 설치되어 있다. 이 결과 화강석으로 마감된 수직의 콘크리트 타워와 암청색(cobalt blue) 트러스의 대조는 과학산업도시의 강한 구조美를 느끼게 한다. 이러한 강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건축가 팽실베르는 대지와 주변환경과의 연관성을 고려하여 이 대형시설물을 자연(nature)과 과학(science) 사이의 상보적 매개(complementarity / 상호보완성)로 해석하고 있으며, 물/빛/식물이라는 세가지 주제가 과학산업도시의 중요한 디자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첫째, 물(L'eau)는 우주와 생명의 연결중심을 의미한다. 과학산업도시는 수공간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지반 레벨에서 지하 레벨까지 수로에 의해 낙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수공간의 해석은 파리-市의 3개 운하가 합류하는 라 빌레트의 장소적 맥락성(context)과도 부합되며, 한편으로는 중세시대 城(casle)과 해자(垓字 / moat)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또한 이 수공간에는 적정한 스케일의 인공연꽃과 거북이가 떠있어 관람객의 재미를 더한다.
둘째, 빛(La lumière)은 삶에 필요한 에너지의 원천을 상징한다. 과학산업도시의 지붕 2곳에 설치된 직경 17m 돔(cupola)은 강선(cable)과 테프론(Teflon) 코팅 섬유로 구성되어 상설 전시실 내부로 자연채광을 유도하고 지붕 돔의 천창부는 태양빛을 최대한 흡수하도록 자동 회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셋째, 식물(La végétation)은 자연과 과학의 매개를 의미한다. 과학산업도시의 남측, 거대한 유리 커튼월로 구성된 3곳의 온실(greenhouses)은 식물 생장의 환경적 요소를 구성하며, 유리를 통해 입사된 빛은 온실과 같이 실내 에너지로 사용된다. 또한 세계 최초로 사용된 점형지지 유리창문 시스템(point glazing system)에 의해 건축물의 외관이 거대한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투명하면서 가벼운 느낌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남쪽 정면에는 은빛의 원구(la Géode)가 있다. 공원 지반 레벨에서도 원구의 반이 보일 정도로 거대한 규모이며, 과학관의 지하 수공간에 완전한 구의 모습으로 놓여져 있다. 이 원구는 과학산업도시에서 가장 강하고 인상적인 상징물(signal)이다.
‘우주(Universe)’를 의미하는 이 원구는 표면에 비추어진 구름의 모습이 지구의 대륙처럼 보이기도 하고, 방문객 주변의 환경을 커튼처럼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게 구의 표면은 일 드 프랑스-지역(Ile de France)의 변화무쌍한 하늘을 반영하고, 또한 이 이미지를 더욱 확장할 수 있도록 스테인레스-스틸 미러(stainless steel mirror)로 마감되어 있다. 원구 내부의 루이 뤼미에르 극장(Le cinéma Louis Lumière)에는 직경 26m의 반구형 스크린(hemispheric screen)이 설치되어 있다.
- 건축설계정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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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24. 22:00 Archi-tour_Overseas/Paris(2010)

라데팡스에서 Grande-Arche는 명물중의 명물이다. 관광객의 대부분이 이 곳을 배경으로 추억 한장씩 남기고 가는데, 이 곳의 뒤편을 가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은것 같다. 공중도로라 하여 그라운드 2.0 개념의 공중통로인 셈이다. 길게 뻗은 다리를 기준으로 호텔등의 숙박시설들이 있고 한편으론 공동묘지가 자리하고 있다. 우리네의 장묘문화와는 다른 한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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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와 목재의 결합으로 일궈낸 이 다리는 육중한 철근콘크리트로 이뤄진 다리보단 가벼워 보인다. 하지만 갖출건 모두 있기에 부족함은 없다. 벤치에 앉아 있으면 잠이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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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nde-Arche 앞으로 다시 걸어와 사진촬영 감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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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24. 21:56 Archi-tour_Overseas/Paris(2010)

오르세미술관 관람을 끝내고 센강을 따라 앵발리드방향으로 걷다보면 흥미로운 인도교가 하나 보이게 된다. 국내에선 흔히 이런 대지조건이면 짫은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놓게 마련인데 이 다리는 중첩개념의 다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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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 인도교는 솔페리노 인도교(passerelle Solférino) 또는 솔페리노-橋(pont de Solférino)로도 불리며, 1번구의 도로(Quai des Tuileries / Voie Georges Pompidou)와 7번구의 도로(Quai Anatole France / Voie sur Berge Rive Gauchue) 사이의 센-江(la Seine)을 가로질러 세워져 있다.
그리고 북측의 1번구 쪽으로 튈르리 정원(Jardin des Tuileries)과 연결되며, 남측 7번구 쪽으로는 솔페리노 부두(Port de Solférino)와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이 인접하여 있다. 7번구 서남쪽으로 아상블레 나시오날레(Assemblée Nationale)-지하철역이 있으며, 서쪽으로 국회의사당(Assemblée Nationale / 원래는 부르봉-宮 Palais de Bourbon)이 위치하고 있다. 원래 이 곳에는 1861년 나폴레옹 3세(Napoleon III)에 의해 개통된 주철제 다리(cast iron bridge)가 약 1세기 동안 위치하고 있었으며, 폴-마르텡 갈로슈 드 라갈리세리에(Paul-Martin Gallocher de Lagalisserie)와 줄르 사바렝(Jules Savarin)에 의해 설계되었고, 그들은 1855년에 개통되었던 앵발리드-橋(Pont des Invalides)를 설계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 이 다리는 아나톨 프랑스 강변로(quai Anatole-France)와 튈르리 강변로를 잇는 차량(vehicles) 이동이 가능한 교량이었으며, 1859년 솔페리노 전투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하여 솔페리노-橋로 명명되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특히 바지선의 충돌 이후 교량의 구조가 약화되면서 1961년 기존 주철제 교량은 철거되고 강제 인도교(a steel footbridge)가 새로 만들어졌지만, 1992년 다시 철거되었다.
오르세 미술관과 튈르리 정원을 연결하는 현재의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 인도교는 프랑스 건축가 마르크 밈람(Marc Mimram / 1955~)의 설계로 1997년 공사가 시작되어 1999년 완공되었다. 그 후 2006년 교량 건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 인도교(Passerelle Léopold-Sédar Senghor)로 새로 명명되었다.
이 다리는 중간 교각 없이 길이 106m, 폭 15m의 한판 구조로 센-江을 가로질러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구조는 건축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사례이다. 긴 교량의 구조체는 에펠강제건설-社(Eiffel Constructions métalliques)에 의해 150t의 철강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를 지지하고 있는 양단의 기초는 콘크리트 기둥의 형태로 지반 속으로 15m가 매립되어 있다. 상판은 외래 수종의 목재인 타베비아-木(프랑스 국립도서관 옥외 데크에 사용된 브라질-産 목재)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 목재는 교량의 외관에 가벼우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지만 목재의 강도(solidity)가 매우 강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북측 둔치(Rive Droite) 지하 통로(subterranean passage)를 거쳐 튈르리 정원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교 상판에는 벤치(benches)와 가로등(lampposts)이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혁신적인 교량에 의해 마르크 밈람은 1999년 은삼각자상(Prix de l'Equerre d'Argent / 프랑스 올해의 건축상)을 받기도 했다.
-건축설계정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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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13. 05:06 Archi-tour_Overseas/Chartres
작년까지 이 곳 바닥의 미로를 탐구하느라 인터넷을 통해 많은 자료를 구하게 되었다. 그 준비한 시간으로 수녀원에 공사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프로젝트 진행보류로 접어야 했었다. 아쉽게 프로젝트가 끝나서인지 실물을 보고 싶다는 욕구는 더 간절했지만, 2009년 파리 방문시엔 빠듯한 일정속에서 하루를 할애하기란 쉅지 않았다. 이번 방문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파리시내에서 샬트르까지는 몽파르나스역에서 샤르트르행 SNCF보통열차를 이용하면 된다. 여행책자엔 하루에 열번정도 운행을 한다기에 역으로 빨리 가서 표를 끊었는데 왕복으로 30유로이다.
너무 비싸다는 생각밖엔.....
암튼 이렇게 열차로 약 1시간을 달리면 샤르트르역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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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트르역에 내려서 선물가게와 레스토랑들이 들어선 완만한 언덕길을 15분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저멀리 첨탑이 길을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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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탑을 따라서 이동하면 어느덧 샤르트르 관광안내소가 보인다. 이 곳에서 지도를 받고 잠시 기념품을 감상한다. 그리고 성당으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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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안내소 출입문 앞에 있는 지도이다. 이 지도를 보면서 성당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고 샤르트르 거리의 산책코스도 미리 파악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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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입구에 도착했다.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비해 관광객이 별로 없었다. 아마도 절기상 봄이지만 정말 추운 날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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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탑은 구종루라고 하며, 1145~1170년에 건립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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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북쪽의 탑은 휠씬 나중인 16세기에 재건된 고딕양식 건축으로 신종루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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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주 출입구(우측의 입구가 열려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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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길을 따라서 외부를 한바퀴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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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서 북쪽 장미창에 해당하는 위치의 외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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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건물 뒤편으로 생 피아 예배당(보물실)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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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서 남쪽 장미창에 해당하는 위치의 외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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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뒤로 가면 잘 정돈된 나무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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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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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적한 샤르트르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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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북쪽 장미창 모습. 성모 마리아의 영광이 묘사된 북쪽 창은 성왕 루이의 어머니가 기증한 것으로, 디자인이나 색채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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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남쪽 장미창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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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및 벽면의 구조를 유심히 보고 있다. 천장의 리브볼트구조가 벽으로 연결되어지면서 클러스터드 피어가 되어 있는것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하층부와의 색상차이는 내,외부 문화재 보수공사가 진행중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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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회랑에 스테인드글라스로 나타낸 <아름다운 성모 마리아>는 프랑스 대혁명이나 두번의 세계대전에도 파괴되지 않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12세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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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의 미로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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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딕 양식의 총체
샤르트르는 프랑스의 곡창 지대인 보스지방의 중심지이다. 이곳에 프랑스 고딕 성당의 걸작인 샤르트르 대성당이 있다. 웅장한 규모와 섬세한 조각, 그리고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로 대표되는 외형뿐 아니라 성모 마리아의 옷 조각이라고 주장되는 성물()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고딕 양식의 총체라 할 만큼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성당은 3차례나 화재를 입고 다시 짓기를 반복한 험난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9세기에 지어진 성당은 11세기 초와 12세기 초에 각각 화재를 입은 후 재건되었고, 1194년 또다시 화재를 입어 건물 대부분이 파손된 이후 1220년에 다시 지어져서 오늘날의 외관을 갖추게 되었다. 성당 건물의
전체 길이는 약 130m, 건물 내 중앙부의 너비는 16.4m로 프랑스 제일의 규모이며, 높은 건물과 첨탑, 수직의 상승감을 주는 외벽은 고딕성당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 다른 양식의 첨탑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도 이 성당만의 특징이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두 첨탑은 각기 다른 시대에 건설된 것으로 두 건축 양식의 차이를 한 눈에 비교해볼 수 있게 한다. ‘왕의 문’이라고 불리는 정문 주위에 새겨진 정교한 인물 조각들은 살아있는 듯 활기찬 동작과 긴장감 있는 얼굴 표정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붙든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와 성스러운 유물
아케이드를 비롯하여 높다란 창에 짜 넣은 176개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거대한 장미창() 또한 이곳의 명물이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장미창은 성당 내부에 있는 꽃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로서, 그 세련된 아름다움 때문에 ‘프랑스의 장미창’으로 불린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성모 마리아를 비롯하여 많은 성인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서쪽 정면의 장미창은 최후의 심판을, 남쪽 장미창은 영광의 그리스도를, 북쪽의 장미창은 성모를 주제로 하고 있다. 특히 ‘샤르트르의 청색’이라고 불리는 특이한 색감이 신비감을 자아낸다.
서기 876년부터 성당에는 그리스도를 낳을 때 성모 마리아가 입었다는 옷 조각이 귀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샤를마뉴(Charlemagne) 대제가 십자군 원정예루살렘에서 선물 받은 것을 손자인 카를 2세(Karl II)가 성당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성스러운 유물은 1194년 대화재 때 소실될 뻔 했으나 성직자들이 재빨리 성당 지하 예배실로 옮겨 놓아 화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다고 전해지는 이 성스러운 유물에 참배하기 위해 전세계 곳곳에서 순례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posted by hamtaengs
2010. 4. 13. 05:05 Archi-tour_Overseas/Paris(2010)
상제리제거리의 고전건물들 사이에 이런 건물이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일전에 봤을때는 야간에 본거라 색감이 드러나질 않았는데, 낮에 보니 확연히 드러나 분위기 또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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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anuelle-gautrand.com/

http://www.manuelle-gautrand.com/retail/retail.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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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트로엥이 2007년 9월 29일,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초호화 쇼룸  C42를 오픈했다. 샹젤리제의 새롱운 명물로 탄생한 C42는 프랑스인 여성 건축가인 마뉴엘 고트란씨가 설계한 것으로 폭 높이 30m, 폭 12m,  총바닥 면적 1천200평방미터의 크기이다. 이 전시장은 지하를 포함, 모두 8기의 턴테이블이 수직으로 설치돼 그 위에 씨트로엥의 과거 및 현재의 주력 모델들이 전시됐고 총 유리면적만도 650평방미터로에 달한다.
전시장 외관은 씨트로엥의 심볼을 모티브로 대담한 디자인이 적용됐다. 시트로엥이 샹젤리제 거리에 처음 쇼룸을 만든 것은 80년 전인 1927년으로 이후 1982년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으로 체인점 레스토랑도 내부에 갖추고 있었다. 이번에 오픈한 C42는 전시장 철거위치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난 2004년부터 공사를 시작, 3년만에 완공됐다. C42라는 명칭은 Citroen의 C와 지번인 42번지에서 따 온 것이다. C42는 오픈기념으로 씨토로엥이 소장해 온 1939년산 트락시 아바가 가장 윗층에 전시됐고 1966년산 2 CV, 1969년산 DS, 그리고 현재 시판중인 모델 3대, 컨셉카 2대 등이 전시됐다.
이같은 구조는 하늘로부터 역사가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C42는 향후 3개월마다 차량 전시위치를 바꿀 예정이다. C42는 샹젤리제에서 가장 마지막에 건설(1975년)된 건물로 기록에 남아있다.
이진영 기자 ljy01 autodaily.co.kr

미술관이라 해도 좋을 시트로엥 전시장

그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시트로엥 전시장이다. 우리에게는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자동차이지만 사실 프랑스인들이 가장 애정을 가지는 자동차회사가 시트로엥일 것이다. 알랭 들롱이 나오는 암흑가의 이야기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자동차가 바로 시트로엥이며 2마력의 자동차라고 해서 2CV라고 부르는 자동차는 단종되었으면서도 여전히 파리 젊은이들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이 매년 1월이면 열광하는 파리-다카르 랠리의 단골 우승도 시트로엥의 차지이다. 더 웃긴거는 19세기 초에 시트로엥이 자동차를 개조해서 프랑스에서 동남아까지 히말라야 산맥을 자동차로 넘어 갔다는 사실... ●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의 배경처럼 흰색과 붉은 색으로 장식한 전시장은 건물의 가운데를 터서 5층까지 공중에 자동차 전시대를 매달아 놓았다. 마치 거대한 미술관의 전시품처럼 .... 물론 자동차 판매에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겠지만 샹젤리제라는 상징성을 고려하여 시트로엥의 이미지를 잘 살린 전시장으로 한번 들려볼 만한 곳이다.
샹젤리제의 시트로엥 전시관|작성자 tra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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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4. 13. 05:03 Archi-tour_Overseas/Paris(2010)
일요일에 개선문의 방문이라.......
무리수를 띄우긴 했지만 역시나 선택을 질못한것 같다. 게다가 조각부위를 보수하고 있어서 사진촬영엔 좀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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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뚜알 개선문을 관람하려면 지하통로를 따라가면 길게 줄서있는 사람들을 보면 거기가 매표소임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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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나폴레옹 1세가 휘하 군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계획하였다. 설계는 주로 J.F.샬그랭이 맡았으나 그는 얼마 안 가서 죽고 나폴레옹 자신도 실각하였기 때문에 공사는 중단되었다가 1836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완성되었다. 높이 49 m, 너비 45 m로 대체로 고대 로마개선문의 양식을 따랐으나 프랑스 근세 고전주의의 걸작으로 꼽힌다. 각부()를 장식한 조각 가운데 F.뤼드의 《라 마르세예즈()》(1833~1836)은 특히 유명하다. 아치의 중앙 밑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무명용사 묘비가 세워져 있다.
-네이버백과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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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4. 13. 05:02 Archi-tour_Overseas/Paris(2010)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서 라데팡스역에서 환승 후 푸아시까지 이동을 한다.
파리비지트를 구매시 1~3존을 구매한터라 환승시 푸아시(4존)까지 가는 표를 재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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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시는 종점역이면서 한적한 외곽지역이라서 프랑스의 향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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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 내리고 난 후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할아버지 한분을 만나서 되지도 않는 영어를 써가며 열심히 길을 물었다. 워낙 사보아주택은 유명한지라 이 지역에선 관광명소로 지정이 된거 같다. 그래서 잘아시는듯 해보였다.
그 분은 어느나라에서 왔냐고 물으셨다.
먼저 물은건 "JAPAN?" 그래서 "No! KOREA"이렇게 얘기하니 또 되물었다. "north or south?"
왜 물어보시는가 했더니 한국전에 참전했다고 하시는거 같았다. 그래서인지 더욱 반가웠다.
길안내를 필요한 포인트만 잘 찍어주셔서 50번 버스를 타지 않고 도보로 이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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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정도 오르막길을(우측길) 걷다보면 사보아주택의 입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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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문을 들어가면 보이는 건 관리자숙소가 보인다. 형태는 사보아주택의 축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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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따라 50~60미터 걸어가면 드디어 사보아주택이 자리한다. 역시 그 자태는 현장에서 보지 못한 자들은 논할 수가 없을것 같다. 신기하기만 했다. 모형,글,사진으로만 접한 건물을 이렇게 와서 보니 정말 뜻깊고 괜히 내집인 듯 정겹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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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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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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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정원 및 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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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Rue de Villiers, 78300 Poissy, Paris, France, 1928
빌라 사부아(Villa Savoye)는 파리-市에서 30km 떨어진 프와시-市(Poissy)의 빌리에-街(Rue de Villiers) 북측면, 르 꼬르뷔제 공립고등학교(Lycée Le Corbusier)로 둘러 싸인 초지 위에 위치하고 있다.보험회사 중역이었던 건축주가 건축가 르 꼬르뷔제에게 설계를 의뢰하여 세워진 이 주말전원주택(weekend country house)의 주변환경은 1928년 신축 당시 한적한 시골마을의 숲이 우거진 진 곳이었으며, 원래의 건축물은 제2차 세계 대전(World War Ⅱ)에 파괴되었고 현재 건축물은 전후 재건축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르 꼬르뷔제의 작품 중 초기 국제주의 양식(International Style)을 대표하는 중요한 건축물로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축물의 새로운 미학 5개 기본 개념(tenets)이 잘 정리된 작품이다.
필로티(pilotis) – 기둥에 의해 습기 찬 건축물을 지상층 바닥에서 분리하여 위로 올리고, 하부는 지상층의 정원이 연속될 수 있도록 계획한다.
옥상정원(roof garden) – 평평한 지붕층은 정원(garden area)를 포함한 거주목적(domestic purpose)의 생활공간으로 재구성한다.
자유로운 평면(free plan) – 내력벽(load-bearing walls) 사용을 최소화하여 평면이 자유로워지면, 연결 높이(adjoining level)의 고려 없이 칸막이(partitions)를 원하는 곳에 설치할 수 있다.
수평 연속창(horizontal window) – 이러한 창은 조명(illumination)과 환기(ventilation)에 유리하다.
자유로운 입면(freely-designed facade) – 하중 지지 구조물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얇은 외부(thin skin) 벽면과 창문을 구성할 수 있다.
국제주의 양식의 개념과 더불어 빌라 사부아의 가장 큰 특징은 정사각형 그리드에 의한 기둥 배치의 절대 규칙을 기본으로 각 층의 평면은 용도에 맞추어 놀랍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움직이는 시선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보이는 아라비아(Arabia)의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은 르 꼬르뷔제는 이 빌라에서 건축적인 산책로(architectural promenade)의 개념을 적용한 보행경사로를 중앙에 배치하고 있다.
도로에서 평탄한 초지를 따라 짙은 녹색 숲을 배경으로 서있는 백색의 주택으로 진입하면, 지상층(ground level)의 필로티는 자동차가 U-턴(turn)할 수 있도록 현관홀이 곡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서측 주출입구를 지나 현관홀의 경사로를 따라 1층의 주거부분과 정원 그리고 지붕층의 개방된 일광욕장(Solarium)으로 이동하는 동안 실내/외의 모습이 시시각각으로 매우 다양하게 변화한다. 그리고 르 꼬르뷔제는 이러한 동선 상의 풍경을 건축구조물, 창과 가벽 등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빌라 사부아는 숲으로 둘러싸인 초지(meadow) 위에 빌리에-街(Rue de Villiers)를 마주보며 남동향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대지의 동쪽 코너 도로측에는 관리인사택이 있다. 그리고 우수량이 많은 지역기후를 고려하여 르 꼬르뷔제는 지상층 정원의 바닥은 시멘트판 하부에 모래를 깔아 배수기능을 강화하였고, 건강하고 전망 좋은 주거환경을 위하여 습기찬 지층보다 3,500mm 높인 1층에 주생활공간을 배치하고 있다. 이 중심공간은 백색의 외관과는 대조적으로 다채색(polychromatic)의 실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르 꼬르뷔제의 건축적 의도와 평가에도 불구하고, 실재 빌라 사부아는 건축주가 소송을 준비할 정도로 평지붕에서 누수가 발생했고, 이러한 상태로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적절한 하자보수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방치되면서 폐허가 되고 말았다.
-건축설계정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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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4. 11. 04:07 Archi-tour_Overseas/Paris(2010)
언제고 다시와도 여기 분위긴 참 좋고, 건물자체도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저번 방문때는 저녁에 와서 사진촬영이건 건물내부관람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이번엔 내부관람을 목적으로 입구를 찾기로 했다. 정면에선 철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못들어 가는 줄만 알았는데, 건물 좌측으로 관람용 입구가 있다.
간단히 가방 검사를 하고 들어오면 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하고 내부관람을 시작하면 된다. 참고로 여권검사는 없으므로 입장료를 아끼려면 그냥 25살이라고 하면된다. 그러면 4유로를 아끼게 된다.(일반9유로,25세까지는5유로) 눈치를 보고 행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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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관람은 지하1층을 시작으로 지상1~2층으로 이동하게된다.(평면도 참조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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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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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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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1층 & 중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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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2층 및 외부발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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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4. 11. 04:01 Archi-tour_Overseas/Paris(2010)
주말이라서 그런지 수많은 인파로 저 멀리 보이는 곳을 가기 싫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로 간건데..........
흑인들 때문에 짜증 지대로다. 팔찌 사라고 아주 노랠 한다. 그것도 한국말로 말이다.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 무리들이 올라가는 구간마다 계속 심기를 불편하게 했지만 그래도 간다.
내부는 사진촬영을 하지말라고 해서 안찍었지만 딱히 찍기도 뭐했다. 내부는 다른 성당과 달리 단조로와서 감흥을 느끼기엔 조금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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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lique du Sacré-Coeur
비올레 르 뒤크의 제자 P.아바디의 설계로 1876년에 기공하여 1910년 L.마뉴가 완성하였다. 과거의 여러 성당 모양을 본뜬 절충적 성당으로 집중식 플랜의 중심에 큰 돔을 올려놓은 로마네스크풍의 파사드를 채용하는 등, 비잔틴 로마네스크 양식이라고 할 만한 건축이다. 종루에는 세계 최대의 종(26 t)이 있다.
Montmartre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해발고도 129m의 언덕을 이룬다. ‘마르스(군신)의 언덕(Mont de Mercure)’이라는 뜻이라고도 하고, ‘순교자의 언덕(Mont des Martyrs)’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1860년 파리에 편입되었다. 272년 성()도니와 2명의 제자가 순교한 곳이며, 12세기에 베네딕트파의 수녀원이 건립되었다. 그 일부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생피에르 성당은 지금도 남아 있다. 2월혁명(1848) 전에 여기서 정치집회가 열렸으며, 파리코뮌(1871)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1880년경부터 남쪽 비탈면카바레 등이 들어서기 시작하였으며, 기슭에 있는 클리시·블랑시·피가르 등의 광장 부근은 환락가가 되었다. 또한 근대미술의 발달을 촉진한 예술가들이 살았던 지역으로서도 유명하다. 특히 19세기 후반 이래 고흐·로트레크를 비롯한 많은 화가와 시인들이 모여들어 인상파·상징파·입체파 등의 발상지를 이루었으나, 20세기부터 점차 몽파르나스로 옮겨갔다. 그러나 언덕 위에 세워진 사크레쾨르 대성당(1910년 완성)은 순례지로서 신자들이 끊임없이 찾아들고 있으며, 또 유서 깊은 저택과 물랭루주 등의 카바레가 있다. 그 외에도 옛집이 늘어선 거리는 19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아직도 화가들이 많이 찾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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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4. 10. 04:27 Archi-tour_Overseas/Paris(2010)
rer을 타고 미술관 앞으로 나가니 허걱~~~
너무도 많은 인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들어갈 엄두가 안났지만 유랑과 KLM의 효과가 여기서 나타난다.^^
유랑사이트에서 이벤트로 파리비지트와 오르세미술관 표를 보내줬다. 그래서인지 나름 예약한 사람이라고 다른 입구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검색대에서 자꾸 소리가 울려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총거리였다. 결국 삐소리의 범인은 벨트라고 판명나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소지품 완전히 다 빼야 할뻔했다.
결국 들어오긴 했지만 식은땀만 주루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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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 최고재판소로 지어진 건물로 오르세궁이라 불렸으나 불타 버리고, 1900년 개최된 ‘파리만국박람회’를 계기로 파리국립미술학교 건축학 교수였던 빅토르 랄로에 의하여 오르세역으로 다시 지어졌다. 현대적으로 지은 역사()였으나 1939년 문을 닫게 된 이후 방치되었다가 1979년에 현재의 미술관 형태로 실내 건축과 박물관 내부가 변경되어 1986년 12월 ‘오르세미술관’으로 개관되었다.

인상파 미술관에 전시하던 인상파 회화를 비롯한 19세기 미술작품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인상주의를 대변하는 많은 그림을 소장하고 있어 일명 ‘인상주의 미술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대 미술학의 살아 있는 교과서로서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 상징주의 등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가장 중요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는 전시공간일 뿐 아니라 공연·교육·토론의 장소로도 애용되는 다기능 문화 공간이다.

19세기 작품, 정확히 말해서 2월혁명이 일어난 1848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인 1914년까지의 회화·조각·공예 등이 집대성되어 있다. 1층에는 고전주의 거장 앵그르의 걸작 《샘》과 1800년부터 1850년대의 역사화, 샤를르 가르니에 설계의 오페라좌의 정밀 모형도, 1870년 이전의 인상파 회화와 사실주의 회화가 있다. 밀레의 《이삭줍기》와 《만종》, 인상파의 선구 마네의 《올랭피아》 《풀밭 위의 점심》 《피리부는 소년》, 사실주의 작가 쿠르베의 《화가의 아틀리에》 등의 작품이 있다. 2층에는 아르누보실이 있으며 로댕의 《지옥의 문》과 20세기 초 마티스, 보나르 등의 작품이 있다. 3층에는 모네, 드가, 르누아르, 세잔, 고갱, 고흐, 툴루즈로트레크 등의 인상파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고흐의 《화가의 방》, 드가의 《프리마 발레리나》, 세잔의 《카드놀이를 하는 남자들》, 고갱의 《타이티의 여인들》 등이 있다.
19세기 미술의 중심은 인상파·
후기인상파·신인상파 등의 회화이지만, 여기서는 회화뿐 아니라 그 그림이 탄생한 당시의 장식품·조각품·건축양식·풍속 등도 볼 수 있다. 19세기의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http://www.musee-orsay.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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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 10. 04:25 Archi-tour_Overseas/Paris(2010)
작년엔 건너편 베르시지역의 아메리칸센터(프랭크게리)를 가려고 한참을 돌아서 갔었는데 이 다릴보고 짜증이 제대로 몰려왔다. 미테랑도서관 내부에 모형을 통해 다리가 있다는건 알았지만 완공된 줄은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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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드-보부아르 人道橋(Passerelle Simone-de-Beauvoir)는 총길이 304m, 190m 무주공간(free span)의 경보행용 다리이다. 파리-市 센-江(la Seine) 위에 놓인 37번째 다리이며, 파리-市 12번구와 13번구 지역을 연결하고 있다. 근방에는 지하철 케-드-라-가르 驛(Quai de la Gare)이 있다.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 지역의 에펠(Eiffel)-社에서 제작한 렌즈(lens)모양의 중심구조물은 북해(the North Sea), 영국해협(English Channel) 그리고 센-江의 좁은 수문을 지나 운반되었다. 폭 12m, 길이 106m, 중량 650t의 철제 교량 중심부는 2005년 11월 30일, 바지선(barge)에 의해 수로를 따라 운반되어 2006년 1월 29일에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였고, 운반된 거대 교량의 일부는 2시간 만에 조립공사가 완료되었다. 총공사비 약 21,000,000 유로가 투입된 이 인도교는 2006년 6월 최종 검사를 마치고, 7월 일반에 개통되었다.
기획단계 임시로 벡시-톨비악 人道橋(passerelle Bercy-Tolbiac)로 불렸던 이 교량은 2005년 당시 파리 시장이었던 베르트랑 들라노에(Bertrand Delanoë)에 의해 시몬-드-보부아르 人道橋로 명명되었으며, 2006년 7월 13일, 인도교 개통식에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양녀 실비 르 봉(Sylvie Le Bon)이 참석하였다.
시몬-드-보부아르 人道橋의 설계는 1998년 현상설계에서 당선된 오스트리아(Austria) 건축가 디트마르 파이히팅거(Dietmar Feichtinger / 1961~)가 담당했으며, 그는 건축물의 구조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교량은 구조적 형태를 찾아가는 수련과정(stylistic exercise)과 같다.

'건축물의 뼈대 – 그것은 모든 건축가가 흥미를 가져야만 하는 바로 그런 것이다.’
'The bones of the building - that is what every architect should be interested in.’

'이 교량은 전체가 외부로 표현되는 건축물이며, 어떤 것도 숨길 수 없다. 이것이 이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는 기본적인 원칙이다.’
'This is all-revealing architecture, you can conceal nothing. It is the basic principles that make the project.’

이 인도교는 동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파리-市 센-江에 위치한 기존의 다른 세 개의 人道橋 (드빌리 橋 Passerelle Debilly 1900 / 아르-人道橋 Pont des Arts, Passerelle des Arts 1984 / 레오폴드-세다르-셍고르 人道橋 Passerelle Léopold-Sédar-Senghor 1999)의 구조방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 다리의 강제 부재는 기하적 형태에 의해 전단력(shearing force)을 최소화하도록 계획되었다. 렌즈(쇠사슬) 형태의 구조(lenticular structure / arc-catène structure)를 중심으로 양단은 회전단 지지점(rotational support)으로 고정하여 중간에는 다른 지지점 없이 넓은 센-江을 가로질러 세워져 있다. 그리고 인도교의 상판은 서측 13번구 프랑스 국립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프랑수아 미테랑 분관의 전면광장과 동측 12번구 벡시 공원(Parc de Bercy)의 둔치를 직접 연결하고 있으며, 하판은 서측 프랑수아 모리아크 강변로(Quai François Mauriac)와 동측 벡시 강변로(Quai de Bercy)를 서로 연결하며 세워져 있다.
-건축설계정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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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4. 10. 04:20 Archi-tour_Overseas/Paris(2010)
글쎄!!!!!!!
사이요궁은 별루였습니다. 그냥 연못외에서 에펠탑을 바라보기 좋은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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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물소리 정도는 들을만 하다...근데 여기만 보면 성룡이 생각나는 이유...왜일까?


사이요궁은 1937년의 파리 박람회를 위해서 트로카데로 궁전 자리에 건설하였다. 내부는 해양 박물관, 인류 박물관, 프랑스 역사 유적 박물관, 영화 박물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전시물이 충실하다. 사이요궁의 테라스에서는 에펠탑, 샹 드 마르스, 앵발리드의 모습을 짤리지 않고 사진기에 담을 수 있어서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이곳에서 보는 에펠탑의 모습은 정말 일품이다. 하지만 흑인들의 호객행위로 인해 짜증을 감수 해야한다.

에펠탑은 1889년 3월 31일 준공,1889년 5월 6일 개관.
이것을 세운 프랑스의 교량기술자 A.G.에펠의 이름을 따서 명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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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는 984피트(약 300m)로 그 이전에 건설된 어떤 건물에 비해서도 약 2배에 이르는 높이였다. 프랑스에서 제조된 7,300t의 시멘즈 마르탕 평로강이 사용. 탑에는 3개소에 각각 전망 테라스. 파리의 경치를 해치는 것이라고 해서 심한 반대가 있었으나 그대로 남아 무전탑(無電塔)으로서 이용.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55피트의 텔레비전 안테나가 덧붙여져서 텔레비전의 송신탑으로 사용. 탑의 높이는 건설 후 약 40년간 인공 건조물로서는 세계 최고의 자리를 놓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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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4. 10. 03:03 Archi-tour_Overseas/Paris(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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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와서 외관만 보고 꼭 안에 들어가봐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오늘이 그 날이다.
어제까지 비가와서 날씨가 여행을 안도와주는듯 싶었지만 언제 그랬냐는듯 정말 화창한 하루를 즐겁게 보낼거 같다.
이 곳은 상설,기획전시로 나뉘어져 있지만, 안내소에서 컴비네이션 티켓 구매와 내부지도(영어버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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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로 들어가는건 11시부터라서 좀 기다려야 했기에 옆의 서점에서 잠시 머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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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의 특별한건 천정에 아프리카 문양으로 전체를 도배했다.
일반적인 우리네의 단조로운 천정과는 다른 방법이기에 색다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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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에서 표를 구매한 후 골목사이로 들어가면 출입구가 보인다.
좌측으론 서점/사무실, 우측으론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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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로 들어가면 넓고 높은 홀이 있고 이 곳에서 각 공간으로 분리되어 이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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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상설전시는 램프를 타고 올라간다. 계속 걸어 올라가면 어두운 통로를 지나면 상설전시공간으로의 진입이 완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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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재와 칸막이벽 재료의 느낌이 인상적이다. 일관성있는 재료선정으로 일체화된 효과를 볼 수 있고, 특히 아프리카의 느낌이 연상되게 칸막이벽을 가죽느낌의 마감재를 붙인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다른 박물관과 색다른 한가지는 빛의 조절이 흥미로웠다. 일반적으로 유물의 보관등의 이유로 빛의 차단 및 사용에 신중을 기하는데 반해, 이 곳은 빛을 수용하는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외부에 펀칭메탈소재의 전동차양을 설치하고 내부엔 복층유리에 도트프린팅 쉬트를 붙여 최초의 빛이 두번 걸러지게 되는 효과를 보이게 된다. 그로 인해 내부는 쾌적함까지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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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측 방향에서의 전경은 마치 리움의 큐브를 연상하게 되지만, 자세히보면 자유로운 형태의 변형과 색채감의 과감한 배치등이 리움의 것보단 의외로 자연과의 조화를 이룬다. 그리고  숲을 형상화한 프린팅쉬트를 붙여서 연속,연장개념이 부가된다. 자칫 조잡해 보일 수 있는 숲을 이렇게 해놓으니 대가로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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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2층 전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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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기획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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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공연장으로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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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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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측 방향 유리 칸막이(까르띠에의 느낌과 비슷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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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 브랑리 박물관(Musée du quai Branly)는 에펠-탑(Tour Eiffel)의 북동측에 인접하여 위치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아프리카(Africa), 아시아(Asia), 오세아니아(Oceania) 그리고 아메리카(Americas) 등 대륙의 자생적인(indigenous) 미술, 문화, 문명에 대한 전시와 정보제공을 특징으로 한다. 박물관의 이름은 지역명에서 유래된 것으로 브랑리 둔치(quai Branly)에 있는 박물관을 의미한다. 1995년 박물관의 실현가능성(feasibility)을 검토하기 위하여 위원회(commission)가 설립되었다. 검토가 완료될 무렵 박물관 건립을 위하여 에펠탑 근방, 지금의 부지가 예정되었다. 2006년 6월 23일 케 브랑리 박물관 개관 당시,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 1932~)는 케 브랑리 프로젝트에 매우 영향력 있는 지지자였다. 자세한 미술관 건립과정과 루브르 미술관의 원시미술(primitive art) 입문을 위해서는 샐리 프라이스 作 ‘파리의 원시성 : 브랑리 둔치의 자크 시라크 박물관(Paris Primitive : Jacques Chirac's Museum on the Quai Branly), 2007년’을 참조한다. 박물관은 현재 폐관된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대륙미술 국립박물관(Musée national des Arts d'Afrique et d'Océanie)의 수집품들과 호머 박물관(Le Musée de l'homme)의 民族誌(Ethnography) 부문의 수집품들을 포함하여 267,000 점을 영구 소장하고 있으며, 이 중 약 3,500 점이 전시 중이다. 특히, 유토피아(Utopia)지역의 캐서린 페티야리(Kathleen Petyarre), 워문(Warmun)지역의 패디 베드포드(Paddy Bedford)와 레나의 나이야드비(Lena Nyadbi) 등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미술가들(Australian Aboriginal artists)은 이 케 브랑리 박물관을 대표하며, 닌구라 나퓨룰라(Ningura Napurrula)의 경우, 그녀의 서명이 흑백으로 박물관 관리부의 천장에 중첩되어 표현되어 있다.
케 브랑리 박물관은 프랑스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 / 1945~)에 의해 1999년부터 설계가 시작되어 공식 개관은 2006년에 이루어졌다. 박물관의 내부구성은 옥외의 울창한 정원, 전시관, 정보관(mediatheque), 교육관, 극장공연, 관람객 편의시설, 연구관리관 등 다양한 시설을 포함한 복합시설이다. 센(la Seine)-강변의 북측 케 브랑리-街(quai Branly)와 인접한 박물관의 높은 유리 담장은 마치 온실처럼 도로에서 내부 정원의 수목을 볼 수 있으며, 남측 루니버시테-街(Rue de l'Université)에서는 자연스럽게 정원이 도로에 개방되어 있다. 박물관의 남측 정면은 남측의 자연광을 조절하기 위하여 붉은 색의 루버(louver)가 설치되어 있으며, 북측 외벽에는 길이 200m * 높이 12m 규모의 ‘살아있는 벽면(living wall)’이 만들어져 있다. 이 독특한 외벽면은 조경가 질 클레망(Gilles Clément / 1943~)과 식물학자 파트릭 블랑크(Patrick Blanc / 1952~)에 의해 계획되고 식재되었다. 설치 구조물에 의해 ‘살아있는 벽면’의 다양한 식물들은 생기 있게 자생하면서 방문객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다.그러나 이 시설물(installation)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식물의 뿌리(plants roots), 급수시설(irrigation)과 배수로(drainage) 등에 의해 지지대(support system)에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남/북측 도로 중앙에는 각각 박물관 출입구가 배치되어 있고, 지층 필로티 동측에는 카페 브랑리(café Branly)가 있으며 서측에는 주출입홀이 배치되어 있다. 주출입홀에서 수직 주동선 코어(core)를 통해 관람객들은 지하의 교육관람시설과 지상의 전시시설로 이동이 가능하다. 지하층은 교수연수실(pedagogy training sessions), 교육실(classrooms), 공연장(Claude Levi-Strauss theatre / 390석 / 전면객석 포함 483석), 옥외공연장(open-air theatre)과 극장(cinema / 100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약 3,500 점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실은 2층을 중심으로 대륙별로 구분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3층으로 전시실을 확장할 수 있도록 복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5층에는 다중매체도서관(mediatheque / multimedia library), 식당(Les Ombres Restaurant)과 옥외테라스가 배치되어 있다. 그밖에 주출입홀에 인접하여 매표소와 서점(bookstore) / 기념품점(gift shop)이 배치되어 있다.
이 곳은 특별한 수집품을 위해 지어진 박물관이며, 모든 시설은 원시적 대상에 대해 감각 반응(emotional response)을 유도하도록 계획되어야 하고, 빛을 차단하면서도 전시물의 영적 측면(spirituality)을 일깨우고 활성화시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연광을 받아들이도록 디자인되어야 한다. 숲과 강으로 상징화된 그리고 죽음과 망각의 관념이 상존하는 장소에서 이 곳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검열되고 폐기된 작품들의 피난처(asylum)이며, 인간의 당위성(human condition)을 찾아내기 위하여 신과 믿음을 만들어냈던 선조들의 정신(ancestral spirits)적 대화(dialogues)로 충만한 장소이다. 이 곳은 독특하면서도 낯설고 시적이면서 혼란스러운(unsettling) 장소이기도 하다. 이 박물관 건축(architecture)은 서구의 창조적인 표현(Western creative expressions)에 도전하여야만 한다. 구조, 기계설비 그리고 커튼-월, 비상계단(emergency staircases), 파라펫(pedestals), 헛천장(false ceilings), 프로젝터(projectors), 주춧돌(pedestals), 진열장(showcases) 등과 같은 모두 기능적인 사안은 제외하고..이러한 모든 기능적인 요소들은 지속될 수 있다면, 우리의 관점(view)과 의식(consciousness)에서 사라져야만 할 뿐만 아니라, 신성한 전시물과 영적 교감(communion)에 참여할 수 있도록 스스로 사라져야만 한다. 물론 이 같은 디자인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현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현될 건축(resulting architecture)은 생경한(unexpected) 특징을 갖고 있다. 과거 고대의 것(a archaic object)? 과거로의 회기(regression)? 이 모두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정반대이디. 그리고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모든 최첨단 기술(advanced techniques)이 사용되었다. 창문은 매우 크고 투명하며, 거대한 사진(photographs)이 곳곳에 인쇄되어 있다. 매우 불규칙하고 높게 세워진 기둥들은 나무나 토템(totems)으로 오해될 정도이고, 목재 차양(wooden sunscreens)은 광전지(photovoltaic cells)를 내장하고 있다. 수단(means)은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바로 결과이다. 박물관이, 한 그루의 나무로, 단순한 입면이 아닌 안식처(a simple façade-less shelter)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견고한 부분은 사라져야 할 지 모른다. 어쩜 이 비물질화(dematerialization)가 기호적인 표현(expression of signs)과 우연히 만날 수 있다면, 이 점은 선택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곳에서는 이러한 환상(illusion)이 예술작품을 보호하게 되는 것이다. 현존하는 모든 것은, 적당한 차이(a gentle discrepancy)만큼, 대지의 시적 표현(poetry)을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파리의 정원은 심연에 박물관이 용해된 신성한 나무가 되고 있다.
출처 - 건축설계정보

37, quai Branly, 75007 Paris, France(1999~2006)  www.quaibranly.fr
http://modules.quaibranly.fr/plan_interactif/index_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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