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31. 18:07 Archi-tour_Overseas/Paris(2009)

관리 소홀이라고 밖엔 표현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이 마을 자체의 슬럼화가 어느정도 진행이 된건지....
우중충하고 불안감이 고조되는 그런 분위기이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건축가의 건물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도 없고......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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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alvation Army Refuge in Paris was Le Corbusier's first opportunity to create accommodation for the urban poor. The compact site provided the chance for a radical approach both to bringing in light and space and to laying out the entrance halls to accommodate the Salvation Army's reception process. The core of Le Corbusier's design was the dormitory slab with a sheer glass curtain wall. Critical to the success of this south-facing glass wall was to have been a technologically ambitious system of double glazing and air conditioning ('respiration exacte'). These were never built as intended, and the sheer skin of the wall was lost to Le Corbusier's trademark brises soleils later on in an attempt to prevent the inhabitants from overheating. In the spirit of the free plan, Le Corbusier took the entrance hall components out of the dormitory block, constructing a geometric pathway through separate reception buildings outside (text from www.galinsky.com).

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Cit%E9%20de%20Refu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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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Rue Cantagrel, 75013 Paris, France, 1929 ~ 1933
싱거미싱-社(Singer Sewing Machines) 재산의 상속녀인 왕족 폴리냐크(Polignac)의 인도주의적인 기부에 의해 만들어진 파리-市의 구세군(Salvation Army) 빈민 보호소는 서측의 깡따그렐-街(Rue Cantagrel)와 동측의 슈발레-街(Rue du Chevaleret)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 빈민 보호소는 르 꼬르뷔제에게는 도시서민 주거시설을 위한 최초의 작품이다. 프로젝트 개발은 1929년에 시작되었으며, 설계를 맡은 건축가 르 꼬르뷔제는 그의 독특한 디자인 방식으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했고, 1933년에 완공되었다.
남/북의 인접한 건축물 사이에 장축이 동서로 형성된 부정형 대지조건 때문에 유럽의 전통적인 중정형 건축 양식 설계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협소한 대지(compact site) 안에서 구세군의 요구사항, 외부인 출입관리 절차(reception process)를 위한 주출입홀(entrance halls)의 배치 그리고 충분한 빛(light)의 도입과 넓은 소요실(space)을 수용하기 위해서 르 꼬르뷔제의 혁신적인 디자인 접근방식(radical approach)이 필요로 했다. 르 꼬르뷔제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중요시설을 구분하여 명확하게 분류하고, 지원시설들을 근접시키는 근대적인 디자인 방법을 적용했으며, 빈민 보호소 프로젝트에서 요구된 주요시설 群은 다음과 같다.
출입시설 – 주출입홀
서비스시설 – 트럭에 의한 서비스 통로
관리시설 – 접수홀과 접수관리사무실/상담소(원형공간)
사회복지사무실/진료소
경비실
집회실
식당시설 – 남/녀 거주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규모
주방과 그 부속실
숙소시설 – 500 ~ 600 침상(beds)의 규모로 남/여 분리
대지의 지반은 매우 연약하여 지하 15m 깊이까지 철근콘크리트 말뚝을 박아 기초를 보완해야 했다. 또한 빈민 보호소의 핵심구조(core)는 넓은 숙소를 위한 철근콘크리트-造 각층 슬래브(dormitory slab)와 투명 유리 커튼월(a sheer glass curtain wall)로 구성되었으며, 실의 칸막이 벽은 벽돌을 사용하였다. 이처럼 까다로운 여건을 근대건축적인 방식으로 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설계안에 대해 건축심의위원회는 사선제한선 보다 외벽이 40cm가 높다는 이유로 불허하였다. 이에 따라 르 꼬르뷔제는 외벽면을 내측으로 돌출부분 만큼 경사지게 다시 계획하여야만 했고, 오히려 이로 인해 시각적으로는 경쾌한 느낌의 외관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빈민보호소의 설계상 특징은 실내공조시스템(respiration exacte)의 도입과 외벽면의 기밀성을 시도한 최초의 주거시설이라는 점이다.
약 1,000㎡ 면적의 정면 창문의 복층유리 시스템(double glazing system)을 적용하여 실내 공기의 기밀을 유지하여, 여름에는 공조를 통해 쾌적한 공기를, 겨울에는 햇볕을 통해 따뜻한 열원을 보존하는 방식을 채택하려는 야심찬 시도였지만, 당시의 기술수준으로 의도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투명한 복층 유리는 르 꼬르뷔제의 차양시스템(brise soleils)에 의해 그 기능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 없었고, 오히려 이 차양 시스템은 이후 작품에서 르 꼬르뷔제의 대표적인 건축요소로 실내 과열(overheating)을 방지하는 기능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또 다른 특징은 자유로운 평면(the free plan)을 구현하기 위하여 르 꼬르뷔제는 주출입홀을 숙소棟(dormitory block)에서 분리된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출입시설을 외부로 분리함으로써 기하학적인 출입통로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성에 대해 윌리엄 커티스(William J.R. Curtis / 1948~ / 건축사가)는 그의 책 ‘르 꼬르뷔제 – 이상과 형태(Le Corbusier – Ideas and Forms, 1986)’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보자르 양식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통로에 대한 명확한 재해석이며, 중세 城의 성채, 문루(門樓), 해자(垓子)와 도개교(跳開橋)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은유적 도치법에 의해 과거 전제정치의 두꺼운 벽체는 근대적인 해방을 암시하는 투명한 정면으로 대체되었고, V자로 지지하고 있는 철재 캐노피는 위로 올려진 도개교와 같이 느껴진다.’

'clever reinterpretation of a Beaux-Arts ceremonial route... was directly inspired by the bastions, gate-house, moat and drawbridge of a medieval fortress. By metaphorical inversion the thick walls of past despotism became the transparent facades of supposed modern emancipation. The steel canopy with V-shaped tubes supporting it could be read as a drawbridge turned on its head.'

- 건축설계정보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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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31. 18:00 Archi-tour_Overseas/Paris(2009)

Porte d'Orleans역 (4호선) 또는 Cite Universitaire 역(RER B)에서 하차
자유로운 파사드. 창문 요소는 인간 척도에 맞게 표준화되었다. 유니트와 유니트들의 조합.

The house and studio in Paris for Le Corbusier's friend the painter Ozenfant is an early example of 'minimal' architecture, a prototype of the Domino house and a manifestation of some of the principles which Le Corbusier was to set out in his famous 'five points.' It possessed a geometrical clarity inside and out which has since been lost with the elimination of the north-light roof and its replacement by a flat one.
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House%20and%20studio%20Ozenfant
http://www.archiplanet.org/wiki/Ozenfant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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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31. 17:58 Archi-tour_Overseas/Paris(2009)

브라질 학생관은 브라질 정부가 파리에 유학하고 있는 자국의 유학생을 위해 지은 학생 기숙사이다. 현재 브라질 학생관이 있는 시테 인터내셔날 유니베르시테르(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지역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국제교류의 場으로서 세계에서 파리로 유학 온 학생들을 위하여 37개 棟의 학생관(기숙사)이 약 40ha 규모의 대지에 세워져 있다. 이 곳의 학생관 들은 각국의 건축적인 특징을 표현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으며, 브라질 학생관도 서쪽 인근에 세워져 있는 스위스 학생관(1930)과 더불어 르 꼬르뷔제의 국제주의적인 건축관이 담긴 중요한 건축물이다. 이 작품은 원래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市(Rio de Janeiro)의 건축가 루시오 코스타(Lucio Costa / 1902~1998)가 최초 설계안(plan)을 계획했지만, 최종 설계안(final project)은 르 꼬르뷔제에 의해 수행되었다. 주르당-街(boulevard Jourdan) 남측에 자리잡고 있는 브라질 학생관의 외관은 노출콘크리트와 자연석 돌출면이 혼합되어 매끄러운 노출콘크리트의 스위스 학생관과는 다르게 거친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도로에서 단지 내 도로로 들어서면 남측 필로티(pilotis) 하부에 곡면 유리면을 따라 주출입구가 배치되어 있다. 지층에는 남동측으로 관장 숙소와 사무실 그리고 북서측에는 휴게홀, 집회실과 관리인 숙소가 있으며, 중앙 주출입홀을 학생숙소 主棟軸을 따라 중앙부에 안내실와 엘리베이터홀, 계단실이 위치하고 있다.학생숙소동의 북서측에는 수직동선과 음악실, 공용주방, 화장실, 아틀리에(atelier), 독서실 등의 지원시설이 있으며, 중앙복도 맞은 편의 숙소는 남동측면 발코니에 브레이즈 솔레이유(brise-soleils / sun-breakers)가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입면은 마르세이유-市의 유니테다비타시옹의 브레이즈 솔레이유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 건축설계정보 참조 -

This housing block at the Cité Universitaire complex in Paris was designed by Le Corbusier for Brazilian students and researchers.

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Maison%20du%20Br%E9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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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7:55 Archi-tour_Overseas/Paris(2009)

Cité universitaire역에서 하차 후 학교 안으로 이정표를 따라 가면 저 멀리 건물이 바로 보인다. 그리고 학교안에서 식당을 들어가 학생인양 연기를 좀 하면 식사도 가능함(점심).
근데 정말 값싸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외부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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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매입되어 있는 블라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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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층부의 필로티를 자세히 보면 기둥과 보 사이로 배관들이 지나간 통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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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생관은 스위스 정부가 파리에 유학하고 있는 자국의 유학생을 위해 지은 대학 기숙사이다. 현재 스위스 학생관이 있는 시테 인터내셔날 유니베르시테르(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지역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국제교류의 장으로서 세계에서 파리로 유학 온 학생들을 위하여 37개 棟의 학생관(기숙사)이 약 40ha 규모의 대지에 세워져 있다. 대부분의 학생관들은 각국의 전통적인 건축특징을 표현하는 디자인으로 되어 있으며, 이 중 스위스 학생관은 근대건축에서 국제주의의 도래를 상징하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건축물이다.
1920년대 말경 스위스의 대학건설위원회는 스위스 출신 대학생들을 위해 스위스 학생관을 파리에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현상설계 없이 전적으로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인 르 꼬르뷔제와 피에르 잔느레에게 설계를 의뢰하였다. 그러나 당시 르 꼬르뷔제는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 현상설계에서 나타난 대다수 스위스 국민의 의식과 스위스 연방 정부(the Swiss federal authorities)의 설계운영방식에 대한 압박감과 불만으로 이 설계를 수임하지 않으려 했고, 이 때문에 대학건설위원회의 지속적인 추천과 스위스 제네바 대학의 퓨에테르(Fueter) 교수의 중재가 필요 했으며, 결국 르 꼬르뷔제의 설계가 진행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시테 유니베르시테르 지역 의장도 턱 없이 부족하다고 인정한 약 3,000,000 fr(프랑)의 공사비로 건설되었으며, 지반상태도 매우 좋지 않아 19.5m의 파일에 의한 지반보강공사가 있어야만 했다. 이런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르 꼬르뷔제는 근대건축기법에 대한 자신의 건축관을 시험하였고,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건축적 악몽을 쫓아버린 것이 아니라 현대건축의 미래를 건설해 나가기 위한 현실적인 실험의 장이다.”
결과적으로 르 꼬르뷔제의 사보아 주택이 그의 주택작품 중 최정점이라고 한다면, 스위스 학생관은 집합주택의 형식과 이에 따른 도시적 스케일을 구상하는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이 근대주의적인 기숙사는 앞으로 탄생할 국제주의적인 대단위 주거 아파트, 즉 유니떼 다비따시옹(Unite d'habitation)을 예고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필로티 구조 위에 상자형의 노출철근콘크리트 건물棟으로 만들어진 스위스 학생관의 집합주거의 기본적인 건축개념에 대해 르 꼬르뷔제는, 25년 후에 동측 바로 옆 대지에 더 큰 규모로 새로 지은 브라질 학생관(기숙사) 설계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적용할 만큼 매우 확신에 차있었다.
학생관 저층부의 주출입홀과 유려한 곡면의 내부계단은 형태적으로 풍부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부여하고 있고, 필로티(pilotis)는 그 자체로 훌륭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가지며, 필로티 위의 주거부분은 저층부의 유연성과는 대조적으로 건축물의 전체형태가 상자모양으로 각 유니트(숙소)는 칸막이에 의해 명확하게 분할되어 있다. 그리고 이 스위스 학생관은 근대건축물에 반드시 필요했던 기술 즉, 건식구조 건설방식(dry-wall construction)과 차음(acoustic separation)에 대한 실질적인 실험실과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르 꼬르뷔제는 스위스 학생관의 공간과 형태적인 구성에서 건축적 공간과 건설 기술에 대한 그의 통찰력을 매우 균형 있게 유지하고 있다.
- 건축설계정보 참조 -


1층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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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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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é universitaire was founded in 1921 to provide accommodation and support for foreign students in Paris, with a number of residential pavilions endowed by different national communities. The pavilion adheres to Le Corbusier's 'five points of architecture', but with a number of developments since the Villa Savoye. The free façade and horizontal window have become a continuous glazed curtain wall, on the south side of the building (above). The pilotis have developed from thin columns to six massive reinforced concrete 'dog-bones' or 'thighs' with their characteristic figure-of-eight cross section to withstand winds. While the client accepted the student rooms being raised in mid air, the public spaces were required to be on the ground. The plan accommodates them in a separate block sitting on the earth, its curvaceous form contrasting with the simple slab of the student accommodation.
(text from
www.galinsky.com)

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Pavillon%20Suisse

http://www.fondationsuisse.fr/

http://www.paris-architecture.info/PA-072.htm


The Pavillon Suisse or Swiss pavilion was built in 1930 at the Cité International Universitaire, Paris.
The construction of this Pavilion was entrusted, without a competition, by the Committee of Swiss Universities to Le Corbusier and Pierre Jeanneret who at first refused to be charged with this commission. The manner in which their cause was handled by the Swiss federal authorities and the majority of Swiss public opinion at the time of the League of Nations Competition still lay heavy on their hearts. Nevertheless, at the insistence of the Swiss universities, they threw themselves into the work and built the pavilion with a budget reputed by the president of the Cité Universitaire to be only half-sufficient (3,000,000.00 fr.)
The construction of building, created under exceptionally difficult circumstances, provided the occasion for constituting a veritable laboratory of modern architecture: the most urgent were tackled, in particular, dry-wall construction and acoustic separation.

The most famous architect of the 20th-century, Le Corbusier completed not even 60 buildings in his lifetime. But he continues to inspire both worship and loathing around the globe. Swiss by birth, Corbu is the man who coined the term “a machine for living”—which is what he expected from a successful house. He believed that mathematics contained an ideal formula for living, and the Swiss Pavilion is a magnificent example of Corbu working at the height of his power. The 30s saw Corbu formulate many of his most influential theories; his most exciting writings on art, architecture, and urban planning appeared during this period. Here, Corbu worked in collaboration with his cousin Pierre Jeanneret to create a perfect expression of his theory of four ruling elements: sky, trees, concrete and steel. His trademark brutalist materials and his love for rooftop greenery are both beautifully in evidence here. In later buildings, Corbu expanded on these concepts, but the Swiss Pavilion remains one of the most livable residential blocks the master every completed. The dormitory is an elegant, low-rise version of Corbu’s vision of high-density habitation. He dreamed of a city where streets were ignored, parks were essential, and huge high-rises boasted rooftop gardens: the Cité Universitaire was in these ways perfect for his plan. The Swiss Pavilion directs its glazed front south towards the sun, overlooking playing fields. Along the rooftop there are light and air wells, allowing students to sunbathe in privacy, and giving them a garden terrace with potted plants. Down at ground level, visible pilings support the building, which seems to float over a glass-walled lounge area. The stairs of the building are concealed in the curved back section, which is a well-balanced contrast to the 90-degree angles of the dormitory rooms. As you admire Corbu’s deceptively simple plan, consider that this masterpiece was built when many Parisian architects were still flailing around in the turgid remains of Haussman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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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7:50 Archi-tour_Overseas/Paris(2009)

This apartment building in Paris - Immeuble Molitor Appartement - was constructed in 1934 with on top the apartment of Le Corbusier himself. He lived there his whole life, next to the Parc des Princes. It is an interesting building, similar to the Clarté Building in Geneva with its glass façade with rigid exterior. This stands in contrast to his own apartment on top, which has roof vaults, old brick walls in his atelier and a little roof ter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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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Apartment%20Building%20by%20Le%20Corbusier

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7:49 Archi-tour_Overseas/Paris(2009)

제대로 확인이 안되었던 것일까? 길 찾기가 힘들었다. 그것도 이렇게 지도에 표시가 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난 참 바보인가보다. 아무튼 겨우 찾은 이 곳이 리모델링중이라니.....아 슬프다. 2010년도에나 오픈한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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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 Sqare du Docteur Blanche 75016 , paris
월~금 10:00 ~12:30 과 1:30~5:00까지 오픈
Jasmin역(9호선)에서 하차, 5분 도보

1. 서론
1965 년 8월 27일,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던 건축가중 한 명인 르 꼬르뷔제가 타계하였다. 그는 타계하기 두 달전, 자신의 작품들 중에서 어떤 것을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여기며 또한 가장 좋아하는가 하는 질문에 여러 작품 중 첫 번째 예로 라 로쉬 주택을 들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그것은 하나의 위기였다 그리고 또한 열려진 문...... 하나의 출발점 이었다 .” 그의 말 속에는 자신의 초창기 주택에 대한 개념과 「건축적 산책로」의 개념, 「주택의 4 가지 구성」, 그리고 「새로운 건축의 5 원칙」 등 중요한 건축적 사고들이 이 라 로쉬 -쟌느레 주택 구성 속에 초기 모습이 담겨 있으며, 라 로쉬 잔느레 주택에 대한 탐구는 그의 건축적 사고의 형성기에 대한 탐구가 될 것이며, 이 개념들이 향후 그의 건축 구성의 중요한 원리로 정립되어 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었던 것이다.

2. 설계과정
르 꼬르뷔제 는 1917년 1월 파리에서 스위스의 선배인 막스 뒤 보아 (Max du Bois) 의 소개로 철근콘크리트 시행회사의 협력건축가로서 직업적 데뷔를 하였으나 약6년간 이렇다 할 본인의 작품을 작업하진 못했다. 그 후 오장팡과 라울 라 로쉬를 만나게 되어 순수주의 미술작품을 수집하는 것을 돕게 되었다. 르 꼬르뷔제는 그 작품에 걸맞는 집을 지을 것을 라 로쉬에게 권하였고 라 로쉬는 쾌히 승낙했다. 이 건물은 현재의 오뙤이유의 뀔드삭 끝에 지어졌는데, 부지 원 소유주, 은행, 잠정적 건축주들 간의 이해관계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자신의 형 알베르 잔느레를 건축주로 끌어들여 우스꽝스런 ㄱ 자모습의 현재 구조로 건축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두 건축주를 위한 주거용 건물에서 해결해야 할 주요 문제들 중 하나는 신혼의 아담하고 짜임새 있는 주택을 원하는 친척의 요구와, 자신의 집을 순수파와 입체파 회화작품 전시를 위해 사용하기 원하는 수집가의 서로 다른 요구를 통합하는 것이었다.

3. 외관
모든 외벽이 백색이 칠해진 이 주택의 주 볼륨은 쟌네르 부부와 라 로쉬의 주거 및 개인 공간이 있는 긴 직사각형의 볼륨과, 날씬 한 기둥으로 지지되어 땅으로부터 자유롭게 들려진 갤러리가 있는 곡면의 볼륨으로 되어 있으며, 그 둘 사이에 라 로쉬의 주 현관과 홀이 있는 셋 백 된 볼륨이 있어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외관 에서는 두 거주자들의 공간이 단일한 구성 속에 통합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내부에서는 대조적으로 분리된다. 또한 모듈의 적용으로 최적의 황금비를 찾아 적용하였다.

4. 설계에 포함된 형상원리
1) 건축적 산책로
라 로쉬 주택의 각 공간들은 단계적인 탐험을 하도록 차례로 정교하게 연결된다. 공간과 볼륨들을 통한 행렬과 행태 및 색채들의 대비는 이동하는 과정 중에 영속적으로 변화하는 시점에 의해 극적으로 된다. 그러한 노정을 「건축적 산책로」라 하였으며 이는 건물에 대하여 인간의 감각과 육체에 의하여 경험되는 것이다. 이는 그가 젊은 시절 동방으로의 긴 여행을 통해 발견한 건축과 대지 사이의 관계, 즉 방문객이 대지에 접근함에 따라 변화하는 관계를 체험하며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르 꼬르뷔제는 아랍 건축에 대하여 “매우 가치 있는 교훈을 준다. 그것은 보행에 의해 최고의 찬사를 갖는다. 내재된 건축적 배열을 인식시키는 것은 걷는 것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에 의해서이다. 이 원리는 종이위에 고정된 이론상의 지점을 중심으로 디자인된 바로크 건축과는 정확히 반대 되는 것이다” 라며 건축적 산책로의 기본원리에 대하여 설명한다.
라 로쉬 주택에서 보여지 듯 방문자의 움직임에 따른 시점의 변화는 다양한 공간들의 시퀀스와, 내부와 외부, 수직과 수평, 근경과 원경이 교차되며 다양한 경험을 연출해낸다. 건축적 산책로란 바로 이러한 평면에 의해서 만들어진 다양하고도 극적인 정경들을 인간의 운동에 의해 경험하게 되는 일련의 시퀀스라고 할 수 있다. 르 꼬르뷔제는 이러한 시퀀스를 보다 원활하게 이끌어 가기 위한 장치로 램프를 도입한다. 이는 램프가 대부분의 건물에서 필연적인 수직이동을 계단 등을 통한 급격한 전환이 아닌 일종의 평면상의 이동으로 만들어 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라 로쉬 주택처럼 중앙 집중화된 공간구성을 가지고 있는 건물의 수직적인 모티브를 다양한 경험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건물의 규모에 비해 다소 무리가 따르는 램프를 도입한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후 그의 건축에서 마치 「건축적 산책로 = 램프」라는 도식이 성립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이다.

2) 새로운 건축의 5 원칙
제1구성인 라 로쉬 주택과 제4구성 사보아 주택이 계획된 시점 사이에 「새로운 건축의 5원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1923년 처음 출판된 「새로운 건축의 5원칙」은 돔-이노 시스템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이후 그의 생 애 전반에 걸친 가장 중요한 원리로 자리 잡는다.「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수평 띠 창」, 「자유로운 외관」이라는 이 다섯 가지 원리는 라 로쉬 주택에서 그 초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르 꼬르뷔제가 스스로 “수년간의 실무 경험에 기초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듯이 이 원칙은 라 로쉬 주택을 포함한 초기의 여러 근대적 주택의 건설과정을 통해 정립된 것이며 , 전적으로 새로운 건축을 위한 탐구에서 발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도미노시스템에서 슬래브는 위, 아래가 동일하게 평평한 표면으로 되어 자유로운 평면을 가능케 만들어 주고 있다. 이는 보의 노출이 그 아래의 공간이 갖는 수평적 연속성을 제한하기 때문에 균질적인 공간을 담보로 하는 자유로운 평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모더니즘 건축의 공간체계는 구조적 기능을 담당하는 뼈대와 비구조적인 외피라는 이분법적 구성에 의하여 그 정체성을 갖는다. 골조구조의 출현은 이러한 새로운 건축을 가능케 하였으며, 내력벽이 갖는 역할과 형태는 과다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와 같은 구조/비구조의 이분적 구성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기둥은 벽에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서 있게 되고, 기둥에서 분리된 벽들은 자유롭게 배치되어 공간을 구분하는 일련의 칸막이로 그 역할이 축소된다. 그 결과 「자유로운 평면」이 그리고 이에 의해 「자유로운 외관」이 생겨나게 된다. 라 로쉬 주택은 기둥과 벽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고 벽속에 묻혀 있어 아직 「자유로운 평면」이나 「자유로운 입면」이 구현 되었다고 보기 힘들다. 그에 따라 필로티도 부분적으로 사용되며, 수평 띠장도 기둥이 노출되는 불완전한 모습으로 보여 진다. 이는 돔-이노 시스템에서 발전된 논리가 좁고 긴 라 로쉬 -잔느레 주택에서 완벽하게 구현되기란 부적합하며, 대신에 내부공간에서 벽의 모양을 변화시킴으로써 이를 보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라 로쉬 주택의 구성은 균질하게 확장되는 수평 이동 중에 나타나는 다양성이기 보다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다양한 시점에 의한 공간 과 볼륨들의 배열이라는 점에서 라 로쉬 주택은 다른 구성을 갖게 된다. 반면에 옥상정원의 모습은 라 로쉬 - 쟌느레 주택에서 어느 정도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더니즘 건축이 갖는 기둥, 벽, 평면, 입면에 대한 새로운 요구는 마찬가지로 지붕에 대한 새로운 요구를 생겨나게 하였다. 여기서 지붕은 실용적이고 감각적인 이유에서 평평한 형태를 취하게 되었으며 , 라 로쉬 - 잔느레 주택과 이후의 건축에서 르 꼬르뷔제는 이를 정원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점은 미스나 그로피우스 등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미스나 그로피우스는 평평한 지붕이 그 밑에 보호하고 있는 공간의 특정을 명확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한 반면, 르 꼬르뷔제는 옥상정원이 자신의 「평면에 대한 사고」와 결합된 건축적 산책로의 정점을 이룬다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3) 주거의 4형식 중 1형식

6. 라 로쉬 - 잔네르 주택의 의의
라 로쉬 쟌느레 주택은 르 꼬르뷔제의 건축 인생에서 처음 파리에 정착한 뒤 어려운 나날들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또한 그의 초기에, 그리고 일생을 통해 추진될 많은 건축적 개념과 사고들이 나타나는 전환기의 모습으로 보여 진다. 그래서 자신이 말하듯 “하나의 위기이자 또한 열려진 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한 시대의 거장으로서 그의 건축적 여정도 바로 이 건축적 산책에서 그 출발점 을 찾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대건축의 출발점이 바로 이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7. 참고문헌
1) 『Le Corbusier 건축작품읽기』, 기문당, 2001
2)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 르 꼬르뷔제, 정성수 외(역), 태림문화사, 1993
3) 『르 꼬르뷔제 전작품집(8권)』, 르 꼬르뷔제 작품연구회(편역), 집문사, 1991
4) 『현대건축의 거장(르 꼬르뷔제)』, Peter Blake, 윤장섭(역), 건우사, 1989
5) 『르 꼬르뷔제의 생애-건축과 신화-』, S.von Moos, 최창길 외(역), 기문당, 1995
6) 『Le Corbusier 』, Taschen, 2005
7) 『르 꼬르뷔제 건축의 형태분석』, Georrfrey H. Baker, 이승호(역), 국제, 1988

posted by hamtaengs
2010. 4. 13. 05:02 Archi-tour_Overseas/Paris(2010)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서 라데팡스역에서 환승 후 푸아시까지 이동을 한다.
파리비지트를 구매시 1~3존을 구매한터라 환승시 푸아시(4존)까지 가는 표를 재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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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아시는 종점역이면서 한적한 외곽지역이라서 프랑스의 향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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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 내리고 난 후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할아버지 한분을 만나서 되지도 않는 영어를 써가며 열심히 길을 물었다. 워낙 사보아주택은 유명한지라 이 지역에선 관광명소로 지정이 된거 같다. 그래서 잘아시는듯 해보였다.
그 분은 어느나라에서 왔냐고 물으셨다.
먼저 물은건 "JAPAN?" 그래서 "No! KOREA"이렇게 얘기하니 또 되물었다. "north or south?"
왜 물어보시는가 했더니 한국전에 참전했다고 하시는거 같았다. 그래서인지 더욱 반가웠다.
길안내를 필요한 포인트만 잘 찍어주셔서 50번 버스를 타지 않고 도보로 이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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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정도 오르막길을(우측길) 걷다보면 사보아주택의 입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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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문을 들어가면 보이는 건 관리자숙소가 보인다. 형태는 사보아주택의 축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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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따라 50~60미터 걸어가면 드디어 사보아주택이 자리한다. 역시 그 자태는 현장에서 보지 못한 자들은 논할 수가 없을것 같다. 신기하기만 했다. 모형,글,사진으로만 접한 건물을 이렇게 와서 보니 정말 뜻깊고 괜히 내집인 듯 정겹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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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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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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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정원 및 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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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Rue de Villiers, 78300 Poissy, Paris, France, 1928
빌라 사부아(Villa Savoye)는 파리-市에서 30km 떨어진 프와시-市(Poissy)의 빌리에-街(Rue de Villiers) 북측면, 르 꼬르뷔제 공립고등학교(Lycée Le Corbusier)로 둘러 싸인 초지 위에 위치하고 있다.보험회사 중역이었던 건축주가 건축가 르 꼬르뷔제에게 설계를 의뢰하여 세워진 이 주말전원주택(weekend country house)의 주변환경은 1928년 신축 당시 한적한 시골마을의 숲이 우거진 진 곳이었으며, 원래의 건축물은 제2차 세계 대전(World War Ⅱ)에 파괴되었고 현재 건축물은 전후 재건축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르 꼬르뷔제의 작품 중 초기 국제주의 양식(International Style)을 대표하는 중요한 건축물로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축물의 새로운 미학 5개 기본 개념(tenets)이 잘 정리된 작품이다.
필로티(pilotis) – 기둥에 의해 습기 찬 건축물을 지상층 바닥에서 분리하여 위로 올리고, 하부는 지상층의 정원이 연속될 수 있도록 계획한다.
옥상정원(roof garden) – 평평한 지붕층은 정원(garden area)를 포함한 거주목적(domestic purpose)의 생활공간으로 재구성한다.
자유로운 평면(free plan) – 내력벽(load-bearing walls) 사용을 최소화하여 평면이 자유로워지면, 연결 높이(adjoining level)의 고려 없이 칸막이(partitions)를 원하는 곳에 설치할 수 있다.
수평 연속창(horizontal window) – 이러한 창은 조명(illumination)과 환기(ventilation)에 유리하다.
자유로운 입면(freely-designed facade) – 하중 지지 구조물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얇은 외부(thin skin) 벽면과 창문을 구성할 수 있다.
국제주의 양식의 개념과 더불어 빌라 사부아의 가장 큰 특징은 정사각형 그리드에 의한 기둥 배치의 절대 규칙을 기본으로 각 층의 평면은 용도에 맞추어 놀랍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움직이는 시선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보이는 아라비아(Arabia)의 건축물에서 영감을 받은 르 꼬르뷔제는 이 빌라에서 건축적인 산책로(architectural promenade)의 개념을 적용한 보행경사로를 중앙에 배치하고 있다.
도로에서 평탄한 초지를 따라 짙은 녹색 숲을 배경으로 서있는 백색의 주택으로 진입하면, 지상층(ground level)의 필로티는 자동차가 U-턴(turn)할 수 있도록 현관홀이 곡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서측 주출입구를 지나 현관홀의 경사로를 따라 1층의 주거부분과 정원 그리고 지붕층의 개방된 일광욕장(Solarium)으로 이동하는 동안 실내/외의 모습이 시시각각으로 매우 다양하게 변화한다. 그리고 르 꼬르뷔제는 이러한 동선 상의 풍경을 건축구조물, 창과 가벽 등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빌라 사부아는 숲으로 둘러싸인 초지(meadow) 위에 빌리에-街(Rue de Villiers)를 마주보며 남동향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대지의 동쪽 코너 도로측에는 관리인사택이 있다. 그리고 우수량이 많은 지역기후를 고려하여 르 꼬르뷔제는 지상층 정원의 바닥은 시멘트판 하부에 모래를 깔아 배수기능을 강화하였고, 건강하고 전망 좋은 주거환경을 위하여 습기찬 지층보다 3,500mm 높인 1층에 주생활공간을 배치하고 있다. 이 중심공간은 백색의 외관과는 대조적으로 다채색(polychromatic)의 실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르 꼬르뷔제의 건축적 의도와 평가에도 불구하고, 실재 빌라 사부아는 건축주가 소송을 준비할 정도로 평지붕에서 누수가 발생했고, 이러한 상태로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적절한 하자보수도 이루어지지 못하고 방치되면서 폐허가 되고 말았다.
-건축설계정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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