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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29. 10:20 Archi-tour_Overseas/Kyoto

일본 교토[京都] 히가시야마[東山]에 있는 사찰.

본래 명칭은 히가이야마지쇼지[東山慈照寺]이며 줄여서 지쇼지[慈照寺]이다. ‘긴카쿠지’라는 이름은 비공식적 명칭이며, 에도시대[江戸時代]부터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무로마치막부[室町時代]의 8대 쇼군[將軍]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가 은퇴 후 살 저택으로서 1482년 2월 21일부터 지었다. 그는 공사를 시작한 다음해인 1483년부터 긴카쿠지에 옮겨와 살았다. 본래 이곳에는 대규모 건물들도 다수 있었으나 현재에는 관음전(觀音殿)과 도큐도[東求堂, 동구당]만 남아 있으며 이 두 건물은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긴카쿠지의 중심적인 건축물은 관음전이며 ‘긴카쿠[銀閣]’, 즉 ‘은각’이라고도 한다. 정식명칭은 '은각관음전'이다. 관음전은 각기 다른 형식으로 만들어진 두 개의 층으로 지어졌으며 지붕 위에는 청동으로 만든 봉황 조각상이 있다. 1층 신쿠덴[心空殿]은 일본의 전통적인 주택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2층 조온카쿠[潮音閣]는 중국 사원 양식으로 지어져 불당을 설치하고 관음상을 모셔놓았다.
정원의 북쪽으로는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1486년에 세운 도큐도가 있다. 그 안에는 도진사이[同仁斎, 동인제]라 하여 차를 마시며 독서를 할 수 있는 방이 있다.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1485년 선종으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는데 그는 이 곳에 불상을 모셔 놓고 자신의 개인 사원으로 이용하였다. 도큐도 앞에는 긴쿄지[錦鏡池, 금경지]라는 연못이 있는데 이는 관음전 앞까지 이어진다.
정원은 흰 모래를 이용한 조경이 꾸며져 있는데 이는 긴카쿠지의 명물로서 인기가 높다. 이 모래 정원을 긴샤단[銀沙灘, 은사탄]이라 하며 정원 한쪽에 정성스럽게 쌓아올린 모래더미는 달빛이 반사되도록 만든 구조물이라 하여 고게츠다이[向月台, 향월대]라 한다.
아시카가 요시마사는 본래 자신의 할아버지인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가 세운 킨카쿠지[金閣寺, 금각사]를 본보기로 삼아 화려한 건축물을 지으려 했다. 킨카쿠지가 금으로 씌워진 예에 따라 긴카쿠지의 외관을 은으로 씌울 계획을 세웠고 이 때문에 긴가쿠지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그러나 건물 전체를 씌울 만큼의 은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오닌의 난[応仁の亂]이 일어나 교토가 파괴되고 물자 조달이 어려워지자 이 계획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결국 긴카쿠지는 옻칠만으로 마감되어 검은 색을 띤 건축물로 남겨졌다.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1490년 1월 27일에 사망하자 건립 중이었던 긴카쿠지는 미완성 상태로 마무리 되었다. 그리고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뜻에 따라 선종(禪宗) 측에 기증되었고 이로써 쇼코쿠지[相國寺]의 말사가 되었다. 그리고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불교식 이름을 따와 ‘지쇼지’라 개칭되었다. 이후 긴카쿠지는 간파쿠[關白, 관백]였던 고노에 사키히사[近衛前久]의 별장으로 이용되기도 하였으며 쇼코쿠지의 말사로서 줄곧 번창하였다.
1952년 3월 29일에 긴카쿠지의 정원이 일본의 특별사적 및 특별명승지로 지정되었으며, 1994년 12월 17일에는 긴카쿠지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긴카쿠지 [銀閣寺(은각사)] (두산백과)

버스에서 내려 철학의 길을 따라서 은각사로 가는 중....

철학의 길을 지나 상점가 중간길을 따라 올라가면 큰지도가 있는 입구가 나온다.

입구를 통해 잘 정돈된 동백꽃 정원수 사잇길을 들어가면 매표소가 나오고 이제 은각사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매표소를 지나 처음 맞이하는 모래정원. 마침 시간대가 맞아서 정원관리사님의 관리방법을 볼 수 있었다.

일본식 정원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누가 뭐래도 은각사의 중요한 건물은 바로 누각이 아닐까 싶다. 처음엔 왜 금각사처럼 은칠이 안되어 있을까 싶었지만 역사적 배경을 듣고 흥미롭기만 했다.

후지산의 모습과 파도를 형상화한 모래정원의 정수.

비바람이 몰아쳐도 쉽사리 흐트러지지 않는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사진 한장으로 이 풍경을 담는다는게 무리군.

켜켜이 쌓아 올린 처마.

일본식 정원에 대한 지식(네이버 오픈백과 참고)

일본 정원의 역사는 1000여년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8세기에는 꽃과 나무를 집 주위에 심고 물고기를 놀게하여 정원의 한 가운데에 연못을 팠다. 이를 시작으로 자연미를 상징하는 양식을 확립하여 인공적으로 땅을 파서 연못을 만들고 흙과 돌을 쌓아 산을 만들었다. 인공적으로 산과 바다를 만들되, 상징적인 기법을 다양하게 구사하였다. 정원의 아름다움은 어던 과정을 거쳐 형성되엇으며, 심미안을 가지게 되었는가?
정은 작업이나 행사를 하기위한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서 평탄한 땅을 의미하고 원은 야채나 과일나무, 또는 화초를 재배하고 있는 둘러싸인 당을 의미하였다. 이 두단어를 결합시켜 정원이라는 포괄적인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시기는 19세기말 메이지 시대 이후이다.

*정원의 유형
A.지센식 정원:기본적으로 연못을 파서 그 주위에 감상거리를 만든다.
1.주유식정원:재를 띄울수 있을 정도로 연못을 파고 배를 타고 돌면서 연못주변의 경관을 감상하며 즐기는 정원.
2.회유식정원:연못주위에 산책길을 만들어놓고, 그 길을따라 연못을 돌면서 경관을 감상
3.차경식정원:정원에서 내다보이는 주위에 경관과 정원을 조화롭게 배치함으로써 이미 있는 좋은 경치를 자기 정원의 일부인것처럼 경치를 빌려다 쓴다는 의미

B.가레산스이식정원:염못이나 흐르는 물이 없지만 바닥에 잘게 부순 돌이나 흰모레를 깔아 수면과 같은 분위기를 나타내는 방식.
1.선원식 정원:불교사원가운데 선종의 선원에서 정우너에 가레산스이식 정원을 만들어 참선하는 데 활용하는 정원
2.지정식 정원:모래나 하얀 돌을 잘게 부수어 바다나 강물 모양이 나도록 깔아두는 형식으로서 물이 없으면서도 연못이나 강 또는 바다를 상상할수 있도록 하는 정원.

C.로지식정원:다실의 정원을 가리킨다.다실에 이르는 통로로서 다도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낼수 잇도록 꾸민 정원. 다도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차니와라고 한다.
1.초암식정원:다실을 암자처럼 작고 소박하게 짓고 지붕은 초가 지붕으로 만들어 초암과 같은 분위기가 나도록 지었을때 초암에 어울리도록 규모도 작고 소박하고 한적한 느낌이 들도록 만든 정원.
2.쇼인식정원:쇼인에 딸린 정원 양식.쇼인은 무사나 귀족들이 모이는 일종의 사교장으로서 차를 마시기도하고 미술품을 감상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곳으로 화려한 물건을 장식하는 공간이기도 한다. 쇼인 주위에도 로지 즉, 정원을 만드는 데 쇼인 건물에 어울리도록 만든 정원을 말한다. 원래 쇼인은 선사에서 승려가 서적을 읽는 방을 가리킨다. 그러한 것이 무로마치 시대가 되자 귀족들의 저택에 도입되어 쇼인즈쿠리라는 주택양식의 한가지로 정착.

*주변 경관을 조화시키는 차경
차경 즉 샷케이란 일본 정원의 중요한 양식 명칭으로서 정원의 배후에 있는 산이나 바다, 호수, 사원의 건축물 등을 배경으로 활용한다.
차경의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A.가까운 산을 글어들여서 정원의 일부인 것처럼 접속시키는 방법
B.가까운 산을 마치 별도의 다른 경관처럼 느끼게 하는 방법
C.배경에 있는 건물이나 탑을 저웅너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방법
D.바다나 만을 정원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으로 활용하는 방법
E.호수나 멀리 있는 산을 회화적으로 정원에서 바라보이도록 하는 방법
이러한 차경 양식은 헤이안시대부터 이용되었다. 대표적인 정원으로서 슈가쿠인이궁의 정원이 있다.
차경이라는 용어 자체는 중국 명대에 간행된 책인 (원치-1628)에 처음 쓰인말로서 풍경을 활용하는 저우언에 채용된 수법의 하나였다.

*상징성과 회화성을 추구하는 가레산스이
가레산스이는 가산스이, 후루산스이, 아라센스이라고도 하는데 일반적으로 가레산스이라고 한다.
물을 사용하지 않고 물을 표현하는 정원을 말하며 일본에서는 나라시대 이전부터 도입되었다.
정원의 바닥에 모래를 깔고 갈퀴로 물의 파문을 그려 표현하기도 하고 돌을 쌓아 올려 폭포르 만든 다음에 그 아래에 모래를 깔아서 흐르는 불을 상징하기도 한다. 다듬은 나무를 심고 산을 바위로 대치시켜서 산이나 섬을 연상시키는 등 상징적이면서도 회화적인 조원양식이라고 할수 있다.
헤이안 시대에 쓰여진 (작정기)의 기록에 나오는 가레산스이 방식의 구성이 정점을 이룬 시기는 무로마치 시대이다.
헤이안시대에 조성된 모월사, 남북조 시대에 만든 서방사의 정원, 고인산의 기슭을 이용하여 자연삭을 쌓아올려 만든 물이 흐르지않는 폭포와 같은 것이 바로 그러한 예라고 할수 있다.
무로마치 시대가 들어오면서 선종의 교의와 자연의 원근법 표현법에 자극을 받아서 흙담으로 둘러싸인 비교적 좁은 선종 사우너의 정원에 새로운 가레산스이 기법이 등장하게 된다.이것이 오늘날의 가레산스이다.
모모야마 시대와 에도 시대가 되면 그 기법은 다양했다. 예로 말라붙은 폭포모양이 나도록 돌을 가로세로로 배치하고 그 앞에 흰 모래를 넓게 깔아 바다 모양이 나도록 공간을 구했다.

현재는 가레산스이 정원을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첫째 전기식 가레산스이-넓은 정원의 일부를 가레산스이로 조경한것으로 남북조 시대까지의 작품에 많이 보인다.
둘째 후기식 가레산스이-정원 전체를 가레산스이 양식으로 만든것으로 무로마치 시대 이후에 나타난다

*가레산스이의 수법
입체적으로 산을 쌓아 올려 만드는 방식-대덕사의 대선원, 서방사, 천룡사의 정원
평탄한 땅에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용안사의 정원

*다실의 정원 로지
원래의 뜻은 아무것도 서 있지 않은 토지의 지면을 의미한다.
집과 집 사이에 있는 길고 좁은 길 또는 부지내에 만들어진 좁은 통로를 의미한다.
다도에서는 대문을 들어서서 다실문 바로 앞에 이르기까지의 통로가 되는 정원을 로지라고 했다.
이는 모모야마 시대의 유명한 다인인 센노리큐가 고안해낸 양식이다.
로지 양식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1570년 이후이다. 바닥에는 신발이 물에 젖지 않도록 징검돌인 도비이시를 고안해내고석등 울타리 세우고 한적한 분위기와 다실의 청정한 분위기를 주는 간소한 조형물을 적절히 배치하여 정원양식이 성립된것이다.

*정원의 구성요소
나무나 꽃은 기본이지만 넓은 우주나 자연을 나타내기 위해 여러가지 구성요소를 활용하게 된다.
연못과 물, 이시구미라하여 적절히 배열한 자연석, 자연의 풍경을 재현하기 위한 인공산, 인공산 기슭에 야트막한 언덕인 노스지, 심어놓은 나무, 부속물로 징검돌인 도비이시, 길바닥에 갈아두는 포장석인 시키이시, 석등, 물을 담아두는 돌그룻,울타리등이 있다.

*시대 의식을 반영하는 정원의 역사

1.아스카 나라시대의 정원
일본 고대 문헌 기록중에서 정원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일본 서기) 스이코 청황때의 기록이다.
아스카 나라시대의 정우들은 고고학적인 발굴로 어느정도 그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예를 들면 헤이조쿄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은 길이 55미터, 최대폭 5미터의 좁고 긴 굴곡을 이루고 있었고, 밑바닥에는 옥돌을 깔았던 것이 확인되었다.

2.신덴즈쿠리의 정원
10세기 중엽 이후, 후지와라씨가 정권을 잡은후 막강한 재력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양식의 정원을 만들어 저우너을 거닐거나 내다보면서 그 아름다움을 즐긴 양식을 말한다. 당시 헤이안 귀족들의 주거 양식이었던 신덴즈쿠리에 대하여 알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의 귀족인 다치바나 도시쓰나가 썼다고 전해지는 (작정기)가 남아 있기때문이다.

3.정토교 사원의 정원
헤이안 중기 이후 정토 신앙이 보급되자, 당시 귀족들은 극락 정토에 더 가까이 가려는 염원으로 자신들의 공간에 극락정토를 만들려고 하였는데 이를 말한다. 법성사(후지와라 미치나가가 세움) 평등원(후지와라 요리미치)
특징:남쪽으로 낸 대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큰 연못에 무지개 모양으로 걸려있는 홍예교를 건너 연못 한가운데에 있는 큰 섬을 지나서 불당으로 들어가도록 길이 이어져있다.
일본에 가보면 금각사라고 하는 일본의 국보중 하나인 금각사라고 하는 건물도 이에 한 종류이다.

4.돌을 보며 도를 깨치는 선종 사원의 정원
12세기 말에 선종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선종 사원의 건축과 정원의 양식도 전해졌다. 선종에서는 설법보다는 좌선을 중요시했기때문에 화려한 색채나 장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화려함보다는 깊숙한 곳에 있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을 더 귀하게 여겼다. 이러한 취향을 잘 살릴수 있는 것이 바로 돌이었다. 돌을 감상하는 취미는 이 시대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한것으로 독특한 모양을 지닌 돌을 조합하여 만든 정원은 독특한 미의식에서 나온 세련된 정원 양식이라고 할수있다.

5.서방사의 세키테이
선종사원의 양식이나 정원은 선종 도입후 1세기가 지난 뒤에야 일본에 정착하게 되는데 그과저엥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던 승려가 바로 무소 소세키(1275 ~ 1351)였다. 그의 수 많은 작품중에서 교토에 있는 서방사의 정원은 이끼 낀 돌이 주는 그윽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하여 선종의 세계관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 정원이 이후의 정원에 미친 영행이 매우 커서 조선시대에 사신으로 갔던 신숙주(1417 ~ 1475)도 이곳을 방문하여 감탄할 정도 였다고 한다.
서방사는 자연의 지형이나 넓은 연못을 조성하여 극락정토를 연상케하는 정토풍의 정원인데 서방사의 산기슭에는 사느이 심경을 표현하는 가레산스이풍으로 돌을 배치한 저우언이 조성되어 선종정원의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서방사에 정원에 있는 흰모래를 구성요소로 한 이와 같은 가레산스이 기법을 구사한 정원을 세키테이라고 했다.

6.대덕사의 용안사의 세키테이
14세기말부터 대사원을 중심으로 선승들 사이에문학이 발달하고 또 중국의 송나라에서 수묵산수화가 전해져 귀족들도 함께 어울려 시가를 지어 부르는 모임인 시회가 빈번히 개최되었다. 시회를 여는 장소로 선사의 쇼인이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는 데 그 결과쇼이느이 딸린 정원의 조경 양식이 발달하게 되었다.
즉, 암석을 2, 3개를 조합하여 폭포를 표현하였으며 모래를 깔아서 시냇물이나 바다를 상징하고자 하였다. 흙이나 나무를 사용하지 않고 폭포에서 떨어지는 자연의 풍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대표작으로는 대덕사 대선원에 있는 쇼인의 정원과 용안사의 정원--둘다 흰 모래나 잘게 부순 돌로 흐르는 물을 상징한다.

7.다도의 유행과 차니와
15세기 후반부터 교토와 사카이의 귀족이나 무사 또느 금융업자 등의 부유 계층 사람들 사이에는 차를 마시고 다기 드으이 미술품을 감상하면서 주객 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다회가 성행하였다. 다회가 열리는 다실에 정원을 만들어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했다. 그러던 것이 넓은 귀족들의 저택안에 다실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생기게 된다. 신덴즈쿠리풍의 정원의 전통과 쇼인의 정우너 양식을 결합하게 된다.이러한 양식으로 조성한 다실의 정원을 차니와 또는 로지라 했다.
대표작으로는 17세기 초기에 귀족의 별장으로 건축된 가쓰라이궁의 정원이다. 약 7만평방 넓이에 강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고 주위를 산보하면서 풍경을 감상하며 즐길수 있도록 언덕과 건물을 배치하였다...

8.에도 시대의 회유식 정원
영주 도쿠가와 요리후사는 막부로부터 에도 시내의 부지를 하사받아 이곳에 저택과 대규모의 정원을 조성하고 이를 고라쿠엔이라 명명했다.(유명 관광지죠^^*)
명나라의 주순수를 초빙하여 설계 자문을 받았기 때문에 중국적이고 유교적인 취행이 짙게 나타난다. 정원안에 자신이 좋아하는 명승지를 본떠서 만든 산이나 언덕, 연못 등을 배치해놓고 연못주위를 회유하듯이 감상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특히 귀족 저택의 정우너으로 조성하였지만 당시 일반 서민에게도 개방하여 산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오늘날에도 도쿄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야구장도 들어서 있다.
17세기 중엽이 되면 정원에 잔듸를 많이 심었다. 대신 자연석을 쓰는 기법은 많이 줄고 돌도 사석이라고 해서 중요장소에 한개만을 마치 내버려둔듯이 자연스럽게 배치하는 방식이 널리 행하여졌다.
18세기 초에 당시의 실권자 야나기사와 요시야스가 에도에 조성한 정원인 리쿠기엔은 이러한 양식의 정우너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18세기 후반이 되면 정원에 꽃을 심어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 목적을 두는 원예가 유행하게 된다. 에도에서는 묘목 상인들이 화원을 개방하자 에도 시민들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일부 영주들이 정원을 개방하여 서민들에게도 정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미도의 가이라쿠엔이나 시라카와의 난코가 그 예이다.
근세에 서민들에게 개방하여 정원을 감상할수 있도록 하던 현상은 근대의 공원의 형성과정과 연결되는 것이다.


*일본 정원의 사상적 배경

일본 고유의 토속 신앙 불교 그리고 도교가 그것이다.
종교적 상징 사상을 정운 구성원리에 활용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조형화하는 것은 일본 정원의 독특한 발상이라고 할수 있다.
불교 사상가운데 수미산 사상은 조경의 중요 요소가 되었다. 수미산은 세상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초자연의 고산을 말한다. 사면에 황금, 은, 유리, 수정으로 둘러싸여있고 7개의 금산이 동심원 형태로 둘러싸이고 산 사이에는 바다가 있다고한다. 이곳은 초 자연적인 불교적 이상향으로 일컬어지는 데 나라시대에 정원을 만들때 모양을 본뜨는 일이 많았다.
신선사상은 일본에 들어오면서 자연의 풍경 그자체를 신선경이라고 하는등 다소의 의미 변질이 일어났다. 정원의 연못에 만드는 나카지마, 쓰키야마, 이시구미 등은 신선들이 사는 이상세계를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일본 정원에 소나무가 등장하는 데 이 역시 신선사상에 나오는 십장생민속과도 연관이 있다.

*정원에 표현되는 인간과 자연과의 이상적 관계

정원 조성의 원리--
1.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표현한다는 점
2.자연을 인간의 품안으로 끌어들인다는 차경원리이다
3.자연을 압축하여 만든다는 축경의 원리

*한국의 정원
경주의 임해전, 부여의 남궁지, 보길도의 부용동 정원, 강릉 선교장의 활래정, 강진의 다산초당,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한국의 정원 구성요소-석지, 석조, 석함등과 샘터,연못,정자,다리,도랑,돌길,징검돌,마당,굴뚝,담장등을 조화롭게 설치한다.
동양 정원의 구성원리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삼국이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출처 [타인글이나 자료 인용] 일본 전통 문화론1999 박전열. 이영 공저
posted by hamtae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