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31. 18:41 Archi-tour_Overseas/Paris(2009)

http://www.louvre.fr/llv/commun/home.jsp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궁전을 미술관 건물로 사용하고 있으며, 소장된 미술품의 규모는 세계 최대이다. 원래 루브르궁에는 역대 프랑스 국왕들, 특히 프랑수아 1세, 루이 13세, 루이 14세 등이 수집해 놓은 방대한 양의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었는데 프랑스 혁명 후인 1793년 국민의회가 그것을 공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미술관으로 정식 발족하고 그 뒤로도 꾸준히 미술품 수집이 계속되어 오늘날의 대미술관이 이루어졌다. 개관 이래 프랑스 미술의 중심적 구실을 하면서 전세계의 미술가나 미술 연구가 및 애호가들이 수없이 찾아들어 파리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되어 있다. 특히 젊은 화가나 조각가에게 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미술 발전에 기여하는 의의는 매우 크다. 또한 루브르미술관의 관장()이 전국의 공 ·사립 미술관 운영을 총괄하도록 되어 있어, 프랑스 미술관 행정의 총본산이기도 하다. 수집된 미술품은 고대에서 19세기까지의 오리엔트 및 유럽 미술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으며, 등록이 완료된 것만 해도 총 20만 점을 넘는다. 작품은 각 부분마다 연대 ·지역별로 분류되어 광대한 루브르궁전의 북동()을 제외한 거의 모든 건물의 각 층에 배치되어 있다. 회화 ·공예 부문은 2 ·3층에, 조각 부문은 1 ·2층에 진열하고 있다. 또한 19세기 인상파 이후의 회화 부문 역시 루브르미술관 소관인데 그 작품들은 '인상파미술관'에 전시하다가, 1986년에 완공된 오르세미술관으로 옮겨 전시 중이며,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을 비롯하여 모네 ·드가 ·피사로 ·르누아르 ·세잔 ·고흐근대 회화에서 선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들의 우수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 두산백과사전 참조 -

낮이나 저녁이나 루브르박물관은 늘 사람이 많다. 그래서 최대한 늦은 시간을 택했는데도 불구하고 길고 긴 입장객들에 고개를 흔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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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기다림이 끝나면, 지하의 넓은 홀에서 표를 구매하고 각 전시공간으로 이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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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시간이 길지 않아서 중요 작품위주로 관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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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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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대관식.....이 그림 앞엔 역시 관램객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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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작품은 모나리자...
그렇지만 관람객의 관람질서가 완전히 꽝. 수많은 플래시 세례에 눈이 정신없고 모나리자도 정신없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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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로의 비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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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띄엄띄엄있는 휴게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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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을 마치고 메트로로 향하는 길에 역피라미드가 있다. 이 곳에서 인증샷을 한장씩 남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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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8:40 Archi-tour_Overseas/Paris(2009)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유명한 건축물......
늘 이 곳에 가면 몇시간을 기다려야 전망대를 오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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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8:39 Archi-tour_Overseas/Paris(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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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장재를 멀리서 보면  얼룩이 진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가까이 다가가보니 나름 문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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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로 들어가면 1층엔 넓은 홀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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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1층으로 들어가면 쇼핑을 열심히 즐길 수 있는 장소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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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량이 많은 좁고 긴 대지에, 이러한 complex(4천석 컨퍼런스 홀, 회의실, 판매시설)를 위해 수천 평방미터의 부지가 제공되기는 쉽지 않다. Portzamparc은, Porte Maillot(이 지역)는 개선문이나 콩코드광장과 같은 정도의 중요한 도시중심이 아니라 “루브르에서 라데팡스까지의 루트 상에 있는 일종의 무대로 보고 이 건축을 계획하였다. 앞으로 기울어진 기념비적 파사드는 그 앞 공간을 자유스럽게 만들게 해주며 돌출된 큰 면을 만들어 그곳에서 개최되는 다른 행사를 위한 광고물을 설치하여, 차를 타고 가면서도 잘 볼 수 있도록 해 준다. 전면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원뿔체 속에는 오디토리움이 있고 수평면 속에는 공공 출입구가 감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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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8:38 Archi-tour_Overseas/Paris(2009)

파리의 신도시 라데팡스는 파리 교외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파리의 중심지역에 있는 튈르리 공원, 콩코드 광장,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 등은 라데팡스 지구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도시를 관통하는 축을 형성한다. 라데팡스의 상징물로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조각적 입방체는 그 규모가 초기안보다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100m×100m로 루브르궁의 사각 궁전과 거의 비슷한 척도를 가지고 있다. 이는 내부 중앙이 빈 입방체로 구성돼 있으며 흰 대리석으로 마감되어 아이들의 유희처럼 아주 단순하지만, 그 열린 공간은 ‘세계를 향한 창’을 표방하면서 전지구적인 하나의 공감대를 의미한다. 유행과 양식적인 형태를 벗어나 주변의 건물들과 달리 친근감을 주는 순수한 기념비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상부 옥상을 지탱하고 있는 두 개의 아치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5대의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이 엘리베이터는 양쪽 끝을 반원형 유리 돔으로 막은 유리 원통모양으로 고안됐다. 비록 유리원통이라고 하지만 그 강도와 기술적 정교함은 비행기의 창유리와 비교될 정도로 단단해 안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라데팡스는 다른 지역에 비해 우수한 현대 건축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데, 시내 중심부에서는 건축물 보호에 따라 대규모의 신축건물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크게 상업지구와 주택지구, 공원지구로 나뉜다.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이하여 미테랑 전대통령이 열렬히 지지했던 그랑 다르슈라 불리는 초현대식 건물도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랑 다르슈는 하이테크 건축 기법을 사용, 천정을 구름모양의 텐트로 덮은 구조물이다. 이 앞의 넓다란 광장은 파리의 새로운 만남의 장소로서 여름이면 음악회나 연주회 등 많은 행사가 열린다. 새로운 현대식 건물이나마 또 하나의 역사적인 장소로 만들어 내고자 노력한 그들의 건축의식과 설계 개념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이곳을 현대의 개선문이며 미래를 향한 희망의 심벌이라 표현했던 덴마크 건축가 스프레켈센(Johan Otto von Spreckelsen)의 디자인과 논리적인 창의성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는 그랑 다르슈가 준공된 것을 보지 못한 채 타계했다. 그랑 다르슈는 그가 죽은 뒤 프랑스 건축가인 폴 앙드로와 프랑수아 델로지가 함께 완성했다.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3&dirId=313&docId=139558&qb=6528642w7Yyh7Iqk&enc=utf8&section=kin&rank=4&sort=0&spq=0&pid=gt4tMz331x0ssbw9ZYsssv--303204&sid=TBH7bD-7EUwAAHHeB9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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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eur Def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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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ysées La Déf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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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ó, the Art Pi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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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F T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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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Ari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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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데팡스의 바닥재 마감은 줄눈재로 막혀있는것이 아니라 틈새가 있다. 이 틈새로 우천시 트렌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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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드 공간으로 가보면 아랫공간으로 도로가 보인다. 상하로 보차분리가 되어 있는게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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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지하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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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자랑거리인 라데팡스는 1958년부터 개발에 착수,2007년에 완공한 대표적 공공재개발 구역이다. 중심거점 A지구를 먼저 개발한 후 배후지역인 B지구를 개발하는 단계적 개발수법이 활용됐다. 개발기간만도 30년이 넘게 걸렸다. 업무.상업중심의 A지구와 주거.공원중심의 B지구로 구분됐다. B지구는 A지구의 발전에 따른 인력을 제공하기 위해 개발된 지구로 A지구보다 훨씬 대규모면서 주변 환경과 녹지 조성에 주력한 지구다. 각종 교육 및 문화 시설이 들어섰다. B지구는 개발 이전에 개발이 거의 이뤄지지 않은 슬럼지구였으나 1978년 룩셈부르크만한 크기의 공원이 완공되면서 이 공원을 중심으로 개발이 이뤄졌다. 라데팡스의 교통 환경을 보면 충분한 주차시설과 공공교통망을 확충한 게 돋보인다. 관광버스를 제외한 모든 차량은 지하로 다니게 함으로써 지상공간은 보행자만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한경닷컴 > 부동산Plus 박영신 기자
yspark@hankyung.com

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8:37 Archi-tour_Overseas/Paris(2009)

2009년도에 이 곳을 방문했을시는 시간관계상 외부밖에 볼 수가 없었다.
세느강쪽의 도로편에서 보면 까르띠에재단의 그유리벽과 형식면에서는 비슷하나 개념과 디테일이 좀 틀린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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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벽을 지나 공간안으로 진입하면 밑으론 드넓은 정원이 자리하고 있고 그 위로 박물관이 서 있다. 건물밖으로 튀어나온 큐브들의 모습을 보면, 서울의 한강진역 근처에 있는 리움의 3관(장누벨관)과 비슷함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개념만 비슷하고 재료와 분위기는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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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수용하고 차단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해주는 기계장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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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흙과 함께 있는 수많은 봉들은 어둠을 대비한 조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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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한 철제 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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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남측면의 빛의 수용 및 차단을 위한 기계적 장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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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에서 특수흙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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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8:27 Archi-tour_Overseas/Paris(2009)

포럼 데알 (쇼핑몰)이 자리잡고 있는 복잡한 레알 지구를 빠져 나와 퐁피두센타가 있는 곳으로 오다보면 하얀색 철제 테이블과 의자들이 나란히 놓여 있는 " 카페 보부르 "를 만나게 된다. 빨강색과 흑색의 쿠션들이 지나치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최고의 레스토랑 경영자인 코스트그룹과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이 손잡고 또 하나의 '문화 공간'을 창출했다. 주변의 전통적 카페들과는 달리 아주 현대적이다. 춥거나 따뜻하거나 햇살이 비치는 날에는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이 테라스에 앉아 담소를 즐기거나 혼자 생각에 젖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퐁피두센타와 2001년 재개관이후 그 앞에 설치된 장 피에르 헤이노의 작품인 거대한 화분을 여유로이 감상할 수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철제 쥐색 의자들과 대리석 테이블이 주는 차가운 느낌과 기둥과 벽에서 반사되는 아이보리와 베이지 중간색의 이미지가 주는 따뜻함이 절묘히 결합되어 공간에 아늑함을 준다. 퐁피두센타 앞 광장과 거리에는 거리의 예술인과 구경꾼, 관광객 들로 언제나 붐비지만 카페 안은 그 것과 별개의 세상 인양 차분하다.칸칸이 책꽂이는 자기 만의 서재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더해준다. 주로 작가, 언론인들이 주 고객층이고 늘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신문을 읽거나 사무를 보는 사람들, 회의를 하는 사람들, 여유를 즐기면서도 무언가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브런취 는 언제부터인가 파리의 거의 모든 트랜디 카페의 주메뉴가 되었다. 바로 이 곳에서는 언제든지 간단한 식사와 음료수를 즐길 수 있다. 샌드위치, 햄과 치즈를 끼운 크로크무슈, 그 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은 크로크 마담, 치즈와 햄을 넣은 기슈, 크루아상 등으로 간단히 식사를 끝낼 수 있어 좋다. 또한 포도주, 파스티스, 리카르, 뽀르또 블랑과 같은 주류를 한가롭게 음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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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8:20 Archi-tour_Overseas/Paris(2009)

정식명칭은 국립 조르주 퐁피두 예술 문화센터(centre national d’art et de culture Georges-Pompidou). 너비 166m, 안길이 60m, 높이 42m. 소재지구의 명칭을 따서 보부르센터라고 통칭되기도 한다. 도서관(BPI), 공업창작센터(CCI), 음악·음향의 탐구와 조정 연구소(IRCAM), 파리국립근대미술관(MNAM) 등이 있으며, 이 센터의 창설에 힘을 기울인 대통령 G.퐁피두의 이름을 붙여 1977년에 개관하였다. 설계 공모를 통해 이탈리아인 R.피아노와 영국인 R.로저스의 공동설계가 채택되었다. 거대한 철골 트러스 속에 여러 시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으며, 설비 배관이 적색과 청색의 원색으로 칠해져 있다. '문화의 공장'이라고 할 수 있는 대담한 이미지와 자유롭게 내부의 변경이 가능한 설계가 파리건축계에 충격을 주었다. 견학자의 70%는 문화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건물 내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한다고 한다.
-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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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re Georges Pompidou is a complex in the Beaubourg area of the IVe arrondissement of Paris, near Les Halles and the Marais. It houses the Bibliothèque publique d'information, a public library, the Musée National d'Art Moderne, and IRCAM, a centre for music and acoustic research. The building was designed by the architects Renzo Piano, Richard Rogers and Sue Rogers and engineers Peter Rice and Edmund Happold, whose design was not popular at first. However, under the guidance of its first director, Pontus Hultén, it quickly became a noted attraction in Paris. The Pompidou 'revolutionized museums,' the Pritzker jury said, 'transforming what had once been elite monuments into popular places of social and cultural exchange, woven into the heart of the city. The characteristic piping is colour-coded according to the contents: yellow for electricity, red for transport, blue for water, and green for air.' [Wikipedia.org]

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Centre%20Georges%20Pompidou


후면부를 못 둘러봐서 조금 아쉽긴 했지만 정면의 강한 인상으로 후면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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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관람을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상층부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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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중앙홀이 있다. 이 곳의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전시관람을 하면된다. 천정부위의 설비배관을 보면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 보인다. 초기계획시 설비배관의 노출을 실현하면서 변화를 준 모습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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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를 끊고 내부로 들어가면 사진촬영금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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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8:09 Archi-tour_Overseas/Paris(2009)

노트르담 드 파리, 빅토르 위고가 떠오르는 이 곳...
워낙 유명한 곳인지라 특별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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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섬세한 조각들이 웅장함을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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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업시간에 배웠던 프라잉 버트레스........그리고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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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서의 사진촬영은 너무 어두워서 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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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트르 성당과 비슷한 형태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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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성당을 짓는 모습을 형상화한 디오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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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강() 시테섬에 있는 성당이다. 공사는 1163년 주교 M.쉴리의 지휘 아래 내진() 건축이 시작되었고, 성왕 루이 치하인 13세기 중엽에 일단 완성되었으나 그 후에도 부대공사는 계속되어 18세기 초엽 측면 제실()의 증설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프랑스혁명 때 건물이 심하게 파손되어 19세기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였다. 늑골교차궁륭(窿)으로 덮인 길이 약 130m의 장대한 신랑()을 중심으로 하는 오낭식()의 웅대한 건축으로, 신랑 양측의 열주()·트리포리움(명층 아래 연이은 층)·명층(:높은 창)으로 된 명쾌한 3층 구성에서 그 특색을 찾아볼 수 있다.
단정한 서쪽 정면에는 최하층에 《
최후의 심판》의 부조로 유명한 중앙 출입문 등 3개의 출입구가 있으며 여기에서 《제왕의 상》이 늘어선 가로가 긴 중간대를 거쳐 스테인드 글라스를 본뜬 지름 9.6m 장미의 창을 중심으로 하는 층, 열주로 구성된 그랜드 갤러리가 잇달리고, 그 위에 지상 6.9m 높이의 직사각형 쌍탑이 얹혀 있다. 힘차게 활 모양을 그린 다수의 비량()으로 지탱된 남북의 측면에는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의 명층이 줄을 잇고, 중앙 부근에 돌출한 익랑() 끝 부분에는 지름이 13m나 되는 유명한 장미의 창과 아름다운 조각을 볼 수 있다. 익랑과 신랑의 교차부에 치솟은 첨탑()은 19세기에 복원된 것이다. 또한 이 대성당나폴레옹대관식(1804), 파리 해방을 감사하는 국민예배(1944.8.26) 등 여러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

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8:08 Archi-tour_Overseas/Paris(2009)

The Cinémathèque is setting up in the building which was initially conceived by the architect Frank O. Gehry known as the famous Bilbao Guggenheim museum architect. The Cinémathèque building was wittily named "the dancer raising her tutu" by its creator. It faces a park on one side and features a reception hall which makes use of space and light in a very nice way, contrasting with the elevation made of white stone on the side facing Bercy Street. The inside spaces, reconverted by the architect Dominique Brard, make use of an abundance of inclined planes which enable communication between the different volumes and the great number of overlaped levels. [from the project's website] Cinémathèque Française hosts the largest archive of films, movie documents, and film-related objects in the world. It holds daily screenings of a variety of films from all over the world.

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Cin%E9math%E8que%20Fran%E7a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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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8:07 Archi-tour_Overseas/Paris(2009)

관리 소홀이라고 밖엔 표현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이 마을 자체의 슬럼화가 어느정도 진행이 된건지....
우중충하고 불안감이 고조되는 그런 분위기이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건축가의 건물이기에 그냥 지나칠 수도 없고......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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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alvation Army Refuge in Paris was Le Corbusier's first opportunity to create accommodation for the urban poor. The compact site provided the chance for a radical approach both to bringing in light and space and to laying out the entrance halls to accommodate the Salvation Army's reception process. The core of Le Corbusier's design was the dormitory slab with a sheer glass curtain wall. Critical to the success of this south-facing glass wall was to have been a technologically ambitious system of double glazing and air conditioning ('respiration exacte'). These were never built as intended, and the sheer skin of the wall was lost to Le Corbusier's trademark brises soleils later on in an attempt to prevent the inhabitants from overheating. In the spirit of the free plan, Le Corbusier took the entrance hall components out of the dormitory block, constructing a geometric pathway through separate reception buildings outside (text from www.galinsky.com).

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Cit%E9%20de%20Refu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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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Rue Cantagrel, 75013 Paris, France, 1929 ~ 1933
싱거미싱-社(Singer Sewing Machines) 재산의 상속녀인 왕족 폴리냐크(Polignac)의 인도주의적인 기부에 의해 만들어진 파리-市의 구세군(Salvation Army) 빈민 보호소는 서측의 깡따그렐-街(Rue Cantagrel)와 동측의 슈발레-街(Rue du Chevaleret)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 빈민 보호소는 르 꼬르뷔제에게는 도시서민 주거시설을 위한 최초의 작품이다. 프로젝트 개발은 1929년에 시작되었으며, 설계를 맡은 건축가 르 꼬르뷔제는 그의 독특한 디자인 방식으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했고, 1933년에 완공되었다.
남/북의 인접한 건축물 사이에 장축이 동서로 형성된 부정형 대지조건 때문에 유럽의 전통적인 중정형 건축 양식 설계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협소한 대지(compact site) 안에서 구세군의 요구사항, 외부인 출입관리 절차(reception process)를 위한 주출입홀(entrance halls)의 배치 그리고 충분한 빛(light)의 도입과 넓은 소요실(space)을 수용하기 위해서 르 꼬르뷔제의 혁신적인 디자인 접근방식(radical approach)이 필요로 했다. 르 꼬르뷔제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중요시설을 구분하여 명확하게 분류하고, 지원시설들을 근접시키는 근대적인 디자인 방법을 적용했으며, 빈민 보호소 프로젝트에서 요구된 주요시설 群은 다음과 같다.
출입시설 – 주출입홀
서비스시설 – 트럭에 의한 서비스 통로
관리시설 – 접수홀과 접수관리사무실/상담소(원형공간)
사회복지사무실/진료소
경비실
집회실
식당시설 – 남/녀 거주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규모
주방과 그 부속실
숙소시설 – 500 ~ 600 침상(beds)의 규모로 남/여 분리
대지의 지반은 매우 연약하여 지하 15m 깊이까지 철근콘크리트 말뚝을 박아 기초를 보완해야 했다. 또한 빈민 보호소의 핵심구조(core)는 넓은 숙소를 위한 철근콘크리트-造 각층 슬래브(dormitory slab)와 투명 유리 커튼월(a sheer glass curtain wall)로 구성되었으며, 실의 칸막이 벽은 벽돌을 사용하였다. 이처럼 까다로운 여건을 근대건축적인 방식으로 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 설계안에 대해 건축심의위원회는 사선제한선 보다 외벽이 40cm가 높다는 이유로 불허하였다. 이에 따라 르 꼬르뷔제는 외벽면을 내측으로 돌출부분 만큼 경사지게 다시 계획하여야만 했고, 오히려 이로 인해 시각적으로는 경쾌한 느낌의 외관을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 빈민보호소의 설계상 특징은 실내공조시스템(respiration exacte)의 도입과 외벽면의 기밀성을 시도한 최초의 주거시설이라는 점이다.
약 1,000㎡ 면적의 정면 창문의 복층유리 시스템(double glazing system)을 적용하여 실내 공기의 기밀을 유지하여, 여름에는 공조를 통해 쾌적한 공기를, 겨울에는 햇볕을 통해 따뜻한 열원을 보존하는 방식을 채택하려는 야심찬 시도였지만, 당시의 기술수준으로 의도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투명한 복층 유리는 르 꼬르뷔제의 차양시스템(brise soleils)에 의해 그 기능적으로 효과를 거둘 수 없었고, 오히려 이 차양 시스템은 이후 작품에서 르 꼬르뷔제의 대표적인 건축요소로 실내 과열(overheating)을 방지하는 기능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또 다른 특징은 자유로운 평면(the free plan)을 구현하기 위하여 르 꼬르뷔제는 주출입홀을 숙소棟(dormitory block)에서 분리된 구성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출입시설을 외부로 분리함으로써 기하학적인 출입통로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구성에 대해 윌리엄 커티스(William J.R. Curtis / 1948~ / 건축사가)는 그의 책 ‘르 꼬르뷔제 – 이상과 형태(Le Corbusier – Ideas and Forms, 1986)’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보자르 양식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통로에 대한 명확한 재해석이며, 중세 城의 성채, 문루(門樓), 해자(垓子)와 도개교(跳開橋)에서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은유적 도치법에 의해 과거 전제정치의 두꺼운 벽체는 근대적인 해방을 암시하는 투명한 정면으로 대체되었고, V자로 지지하고 있는 철재 캐노피는 위로 올려진 도개교와 같이 느껴진다.’

'clever reinterpretation of a Beaux-Arts ceremonial route... was directly inspired by the bastions, gate-house, moat and drawbridge of a medieval fortress. By metaphorical inversion the thick walls of past despotism became the transparent facades of supposed modern emancipation. The steel canopy with V-shaped tubes supporting it could be read as a drawbridge turned on its head.'

- 건축설계정보참조 -

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8:07 Archi-tour_Overseas/Paris(2009)

This project is one of the new buildings for the Paris Diderot University at Diderot 7 in the Rive Gauche development area.

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Paris%20Diderot%20University%20B%E2timent%20Lavois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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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8:06 Archi-tour_Overseas/Paris(2009)

Almost all of Paris’s social housing authorities have revamped their building strategies. The shift dates to the inauguration of Mayor Bertrand Delanöe, a socialist and a design advocate who, with others, knew the banlieue was an issue long before the riots. The city is now building better social architecture, aiming to reverse social housing’s negative stigma. One of these projects is an unusual concrete building, built for the Société Anonyme d’Economie Mixte Immobilière Interdépartementale in the formerly industrial Masséna area by Beckmann-N’Thépé. The building’s center is carved out about three levels up to create a lofted courtyard, while side portions are also cut out to create several rooftop gardens. The structure contains 48 flats, commerce, and an underground garage (text from Architectural Record).

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Mass%E9na%20Housing

블랙 노출콘크리트의 일체화된 마감에 부분적으로 도장이 되어 있어 색다른 느낌이 난다. 창호의 크기도 다양해서 어찌보면 공사비에도 영향이 있었으리라 본다. 이 동네의 분위기는 돈냄새가 많이 난다. 신도시 개념으로 지어진 듯해 보인다. 그래서 건물들의 변화,도전의지가 많이 묻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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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31. 18:06 Archi-tour_Overseas/Paris(2009)

Social housing situated in revitalized Seine Rive Gauche district in Paris. The two building contain 79 fl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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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Seine%20Rive%20Gauche%20hou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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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31. 18:05 Archi-tour_Overseas/Paris(2009)

미테랑도서관 앞까지 버스,메트로를 이용해 이동하면,ㄱ자형태의 4개의 건물이 대칭적으로 서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치 책을 반만 펴놓은 듯이 보인다. 건물이 높은 언덕에 있어서 계단을 타고 오르면 살짝 중정의 모습이 드러난다.
와우~~~~
그 중정이 숲으로 느껴지게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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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피는 유리커튼월로 되어 있고, 내피는 목재도어가 설치되어 서향의 따가운 태양을 피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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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14 July 1988, François Mitterrand announced the construction and the expansion of one of the largest and most modern libraries in the world, intended to cover all fields of knowledge, and designed to be accessible to all, using the most modern data transfer technologies, which could be consulted from a distance, and which would collaborate with other European libraries. In July 1989, the services of the architectural firm of Dominique Perrault were retained. After the move of the major collections from the rue de Richelieu, the National Library of France opened to the public on 20 December 1996. It contains more than ten million volumes. The new complex consists of a large esplanade and four identical L-shaped towers, whose form recalls the shape of an open book. This architecture was controversial; many considered it too costly, and not very suitable to the storage of book collections. Indeed, wooden boards had to be set up at the windows to protect the books from the light.

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Biblioth%E8que%20Nationale%20Fran%E7ois%20Mitte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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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 ㅁ자데크구역은 목재바닥재로 마감이 되어 있는데, 목재 사이에 논슬립 처리가 된 띠를 매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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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소지품검사를 하고 내부로 들어가면 붉은색의 분위기가 후끈하게 달아오르게 보이지만 열람실로 이동을 하면 분위기가 확 바뀐다.그 옆의 복도에 있노라면 중정의 나무숲을 감상하며 잠시 쉼을 즐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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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의 벽,천장의 마감재 통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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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페로의 특징이 아마도 커튼월 프레임에 있다고 본다. 이화여대의 것과 형식이 비슷하다는 것이 여기서 확인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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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Quai François Mauriac,
13e, 75013 Paris, France
1989 (competition) / 1992~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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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국립도서관(BnF)은 법적 자료들(legal deposit)을 수집/보관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프랑스 정부기관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 가장 큰 규모의 도서관이며, 공공시설(public institution)의 성격을 갖는다. BnF는 파리-市 13번-區(arrondissement)에 위치한 프랑수아 미테랑-分館을 포함하여 여러 곳의 분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BnF에는 자국의 서적과 출판물 약 13,000,000 권이 소장되어 있으며, 초기 갈리카(Gallica)로 시작하여 현재 유로피아나(Europeana)로 확장된 전자도서관(digital libraries)이 함께 운영 중이다. 온라인상의 문서들은 이미지이지만 실재와 흡사하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자 도서관 중 하나이다.
BnF는 수집(collection)과 수장(archiving) 이외에도 연구활동(research activities), 복원(restoration) 그리고 정기적인 전시와 개방적인 대중이용을 통하여 지식보급(dissemination of knowledge) 등 그 업무를 확장하고 있다.
1980년대 수장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프랑스국립도서관 리슐리외-分館(BnF site Richelieu / 58, rue de Richelieu, 75002 Paris / 1868)을 대체하기 위하여 새로운 현대적 도서관이 필요하다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François Mitterrand / 1916~1996)의 제안으로, 파리-市 13번구의 센-江(la Seine)과 인접한 톨비악(Tolbiac) 지역에 위치한 대지를 대상으로 1989년 2월에 국제현상설계가 추진되었다.
이 현상설계에는 244개의 설계안이 세계 곳곳에서 제출되었다. 페이(Ieoh Ming Pei)를 위원장으로 한 심사위원회에서는 1차 선택된 20개의 설계안 중 4개 작품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최종 결과는 당시 30대의 젊은 프랑스 건축가인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
페로의 설계안은 펼쳐놓은 책의 형상과 유사한 L자형의 24층 건물을 대지의 네 모서리에 배치하고 중앙에 선큰-가든(sunken garden)을 이용한 거대한 광장을 배치하였다.

이 설계안의 주제는
첫째, 건축물이 아닌 장소 즉, 개방적이고 자유스러우며 무의식(혼돈)적인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파리-市 전체를 위한 광장, 더 나아가 프랑스를 위한 도서관으로 대지와 인접한 센-江을 따라 펼쳐진 넓은 빈 공간으로 대지의 활력과 상징적인 장소를 부각하는 것이다.
셋째, 네 권의 책과 같은 코너 유리타워는 미니멀리즘적인 설치미술과 같으며, 장소적으로 작을수록 풍부한 느낌을 제공할 것이다.
넷째, 산책광장 같은 공공성과 도서관의 도시적인 공간성을 함께 수용, 성장할 수 있도록 유연한 순환-벨트(service belt)와 모듈화된 열람구역으로 구성하였다.

파리-市 센-江邊 65,300㎡(7.5ha)의 널찍한 대지에 자리잡은 국립도서관 프랑수아 미테랑-분관의 공사비는 약 15억 달러이며, 규모는 지하6층, 지상 24층, 연면적 365,178㎡ 로 라빌레뜨 공원(Parc de La Villette)에 인접한 ‘음악도시(Cité de la Musique)’와 비슷한 규모에 이른다. 최대 서고수장 능력은 20,000,000권으로 현재 도서(국가 문학/역사서적 포함)와 자료(마이크로필름 카드 microfiche 포함) 등 무려 11,000,000권이 소장되어 있으며, 실내에는 1,556석의 열람석(reading)과 2,034석의 연구석(research)석 총 3,59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열람실에서는 지하 2개 층 높이로 개방된 수목이 울창한 선큰-가든(sunken garden)을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도서관에는 현재 약 2,0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완공 이후 도서관의 유리 타워는 많은 기능상의 문제점이 나타났으며, 건축물 시공 상 하자도 많았고, 지하층의 열람실은 창문이 없어 통풍이 잘 되지 않았다. 또한 소장 도서와 크기가 맞지 않는 자동수송시스템 설비도 문제였다. 대규모의 시설로 공간의 효율성 면에서도 많은 지적을 받았고, 사치스러울 정도로 널찍한 열람실에 비해 사무실은 지나치게 비좁아 직원들의 항의와 파업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동선상의 문제도 꾸준히 제기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언론들은 국립도서관 신관의 문제를 불과 8년 만에 사업을 완료한 미테랑 정부의 졸속행정이라고 비판했다.

프랑스국립도서관 프랑수아 미테랑-분관(BnF site François Mitterrand)의 면적개요
- 일반이용공간(Public areas) 59,070㎡
-
접수/이용서비스(reception and public services) 23,000㎡
-
강의홀(lecture halls) 3,000㎡
-
수장고(storage rooms) 71,000㎡ (타워 내부의 26,000㎡ 포함)
-
수납선반(shelves) 약 400km – 20,000,000권 수장
-
관리시설(Administration) 36,000㎡ (타워 내부의 16,000㎡ 포함)
-
설비시설(Technical spaces) 35,000㎡
-
지하주차장(Underground parking) 20,500㎡ – 700대
-
조경면적(Garden and public base) 10,782㎡ – 250그루

- 건축설계정보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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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8:03 Archi-tour_Overseas/Paris(2009)

The Pantheon Paris (Latin Pantheon, from Greek Pantheon, meaning "Every god") is a building in the Latin Quarter of Paris, France. It was originally built as a church dedicated to St. Genevieve, but after many changes now combines liturgical functions with its role as a famous burial place. It is an early example of Neoclassicism, with a facade modelled after the Pantheon in Rome surmounted by a dome that owes some of its character to Bramante's "Tempietto".
Located in the 5th arrondissement on the Montagne Sainte-Geneviève, the Panthéon looks out over all of Paris. Its architect, Jacques-Germain Soufflot, had the intention of combining the lightness and brightness of the gothic cathedral with classical principles. Soufflot died before his work was achieved, and his plans were not entirely followed. The transparency he had planned for his masterpiece was not attained. Nevertheless, it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architectural achievements of its time and the first great neoclassical monument.
As with most famed buildings, the Pantheon Paris has its unique story. The reason the it was was built was to replace the damaged Sainte-Genevieve church under the orders of Louis XV who was putting this monument up as a gratitude to God after his health had recovered. Soufflot was chosen for accomplishing the task. He wanted to have the Gothic style combined with the classical structure. Because of financial problems, Soufflot could not finish the building during his life; he died before seeing it completed and his pupil who finished it, did not exactly have the same ideas of his master and made some changes. However there is little doubt that this building is one of the greatest neoclassical monuments and a true masterpiece.
Shortly after the Pantheon was built (which was called back then the Sainte-Genevieve Church), came the French Revolution. It was then when the Revolutionist government changed the church into a mausoleum, a place to burry exceptional Frenchmen who had sacrificed their lives for their country or who had done something great for France. The Pantheon flipped back and forth to a church over the years but eventually assumed its lasting role as a burial place for martyrs and brilliant French citizens for good.
The sight that this building offers is quite fantastic. You can see literally see almost all of Paris. The inside architecture is visually amazing: it has the Gothic decorations combined with the mainly classical style of the building, creating such an admirable neoclassical monument. The Pantheon is a must-see when you visit Paris,
both because of the imposing architecture it has and in respect to the people that made the world a better place.

http://www.pantheonpar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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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 진입을 시작하면 우선 천장부위를 바라하면 화려하면서 섬세한 조각과 문양들에 감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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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로 진입을 하고 중앙부위에 오면 진자가 시간을 가르키며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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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들이 시사하는 바가 재미를 더했는데, 그 중 잔다르크의 일생이 담긴 벽화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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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옷깃이 날리며 살아있는듯한 조각품들 앞을 보면  눈이 호강한다는게 이런거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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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 내려가면 무덤이 있다. 장자크루소,빅토르위고등 유명한 분들이 이 곳에 안치되어 있다. 숙연한 마음으로 천천히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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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8:01 Archi-tour_Overseas/Paris(2009)

프랑스 파리 5구에 자리하고 있는 아랍 관련 연구소이다. 1980년 프랑스와 아랍국가들 사이의 합의로 세워졌다. 아랍 국가들과 프랑스의 관계 뿐 아니라 아랍권과 서구 유럽국가들 사이의 관계 증진과 이해를 위해서도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아랍 세계와 국가 그리고 문화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현재 1987년 완공된 아랍의 정통적인 요소와 서구적 요소 그리고 현대적 느낌이 가미된 독특한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프랑스 유명 건축가 장누벨(Jean Nouvel, 1945~)이 설계한 것이다. 연구소 건물 일부 층에서는 9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아랍 문화재들과 그림, 아랍과 서구 사이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 두산백과사전 참조 -


In 1980, 18 Arab countries concluded an agreement with France to establish the AWI to spread knowledge and research the Arab World’s language, and its cultural and spiritual values, reflecting the opinion, that the Arab world - its civilization and values, its past and its future - needs to be better known and understood in the West. It supplies cultural information in a wide range of media: libraries, electronic databanks, a conventional, glass-case museum, audio-visual displays, and an outreach program of touring exhibits and performances as well. This is not an Arab building, but an occidental one, it’s not pastiche, like the Paris Mosque, but modern and from an urban point of view, the Institute is a hinge between 2 cultures and 2 histories. Certain symbolic items like the “moucharabiehs” whose polygons of varying shapes and sizes, create a geometric effect recalling the Alhambra. Jean Nouvel designed the
whole of the museum, including the showcases, seating, and display furniture.

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Arab%20World%20Institute

언뜻 보면 커튼월에 문양으로만 보이는데, 각각의 모듈마다 빛을 향한 기계적인 움직임이 신기할 따름이다. 엄청난 공사비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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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내부로의 진입은 지하층의 진입과 두 건물 사잇길로의 진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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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은 마치 가설계단같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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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인 장치. 즉 조리개들의 조합으로 이뤄진 한 모듈이 사람키보다 크다. 사진상으론 그렇게 안보이는데. 막상 와서 보니 디테일이 장난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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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별로 있는 열람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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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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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건물간 브릿지를 통과하면 옥상의 카페가 자리하고 있고 이 곳이 전망대 역할을 한다. 노틀담성당이 보이고 세느강의 유람선도 유유히 지나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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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8:00 Archi-tour_Overseas/Paris(2009)

Porte d'Orleans역 (4호선) 또는 Cite Universitaire 역(RER B)에서 하차
자유로운 파사드. 창문 요소는 인간 척도에 맞게 표준화되었다. 유니트와 유니트들의 조합.

The house and studio in Paris for Le Corbusier's friend the painter Ozenfant is an early example of 'minimal' architecture, a prototype of the Domino house and a manifestation of some of the principles which Le Corbusier was to set out in his famous 'five points.' It possessed a geometrical clarity inside and out which has since been lost with the elimination of the north-light roof and its replacement by a flat one.
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House%20and%20studio%20Ozenfant
http://www.archiplanet.org/wiki/Ozenfant_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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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7:59 Archi-tour_Overseas/Paris(2009)

Maison du Brésil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인데, 이곳의 외장은 펀칭메탈로 이뤄져 있다. 펀칭의 크고 작음이 문양을 만들어내고 있다. 재료 자체를 충분히 활용한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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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 31. 17:58 Archi-tour_Overseas/Paris(2009)

브라질 학생관은 브라질 정부가 파리에 유학하고 있는 자국의 유학생을 위해 지은 학생 기숙사이다. 현재 브라질 학생관이 있는 시테 인터내셔날 유니베르시테르(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지역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국제교류의 場으로서 세계에서 파리로 유학 온 학생들을 위하여 37개 棟의 학생관(기숙사)이 약 40ha 규모의 대지에 세워져 있다. 이 곳의 학생관 들은 각국의 건축적인 특징을 표현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으며, 브라질 학생관도 서쪽 인근에 세워져 있는 스위스 학생관(1930)과 더불어 르 꼬르뷔제의 국제주의적인 건축관이 담긴 중요한 건축물이다. 이 작품은 원래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市(Rio de Janeiro)의 건축가 루시오 코스타(Lucio Costa / 1902~1998)가 최초 설계안(plan)을 계획했지만, 최종 설계안(final project)은 르 꼬르뷔제에 의해 수행되었다. 주르당-街(boulevard Jourdan) 남측에 자리잡고 있는 브라질 학생관의 외관은 노출콘크리트와 자연석 돌출면이 혼합되어 매끄러운 노출콘크리트의 스위스 학생관과는 다르게 거친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도로에서 단지 내 도로로 들어서면 남측 필로티(pilotis) 하부에 곡면 유리면을 따라 주출입구가 배치되어 있다. 지층에는 남동측으로 관장 숙소와 사무실 그리고 북서측에는 휴게홀, 집회실과 관리인 숙소가 있으며, 중앙 주출입홀을 학생숙소 主棟軸을 따라 중앙부에 안내실와 엘리베이터홀, 계단실이 위치하고 있다.학생숙소동의 북서측에는 수직동선과 음악실, 공용주방, 화장실, 아틀리에(atelier), 독서실 등의 지원시설이 있으며, 중앙복도 맞은 편의 숙소는 남동측면 발코니에 브레이즈 솔레이유(brise-soleils / sun-breakers)가 설치되어 있다. 이러한 입면은 마르세이유-市의 유니테다비타시옹의 브레이즈 솔레이유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 건축설계정보 참조 -

This housing block at the Cité Universitaire complex in Paris was designed by Le Corbusier for Brazilian students and researchers.

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Maison%20du%20Br%E9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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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ur Montparnasse  (0) 2010.05.31
posted by hamtaengs
2010. 5. 31. 17:55 Archi-tour_Overseas/Paris(2009)

Cité universitaire역에서 하차 후 학교 안으로 이정표를 따라 가면 저 멀리 건물이 바로 보인다. 그리고 학교안에서 식당을 들어가 학생인양 연기를 좀 하면 식사도 가능함(점심).
근데 정말 값싸게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외부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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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에 매입되어 있는 블라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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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층부의 필로티를 자세히 보면 기둥과 보 사이로 배관들이 지나간 통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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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생관은 스위스 정부가 파리에 유학하고 있는 자국의 유학생을 위해 지은 대학 기숙사이다. 현재 스위스 학생관이 있는 시테 인터내셔날 유니베르시테르(Cité Internationale Universitaire) 지역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국제교류의 장으로서 세계에서 파리로 유학 온 학생들을 위하여 37개 棟의 학생관(기숙사)이 약 40ha 규모의 대지에 세워져 있다. 대부분의 학생관들은 각국의 전통적인 건축특징을 표현하는 디자인으로 되어 있으며, 이 중 스위스 학생관은 근대건축에서 국제주의의 도래를 상징하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건축물이다.
1920년대 말경 스위스의 대학건설위원회는 스위스 출신 대학생들을 위해 스위스 학생관을 파리에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현상설계 없이 전적으로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인 르 꼬르뷔제와 피에르 잔느레에게 설계를 의뢰하였다. 그러나 당시 르 꼬르뷔제는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 현상설계에서 나타난 대다수 스위스 국민의 의식과 스위스 연방 정부(the Swiss federal authorities)의 설계운영방식에 대한 압박감과 불만으로 이 설계를 수임하지 않으려 했고, 이 때문에 대학건설위원회의 지속적인 추천과 스위스 제네바 대학의 퓨에테르(Fueter) 교수의 중재가 필요 했으며, 결국 르 꼬르뷔제의 설계가 진행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시테 유니베르시테르 지역 의장도 턱 없이 부족하다고 인정한 약 3,000,000 fr(프랑)의 공사비로 건설되었으며, 지반상태도 매우 좋지 않아 19.5m의 파일에 의한 지반보강공사가 있어야만 했다. 이런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르 꼬르뷔제는 근대건축기법에 대한 자신의 건축관을 시험하였고,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건축적 악몽을 쫓아버린 것이 아니라 현대건축의 미래를 건설해 나가기 위한 현실적인 실험의 장이다.”
결과적으로 르 꼬르뷔제의 사보아 주택이 그의 주택작품 중 최정점이라고 한다면, 스위스 학생관은 집합주택의 형식과 이에 따른 도시적 스케일을 구상하는 출발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이 근대주의적인 기숙사는 앞으로 탄생할 국제주의적인 대단위 주거 아파트, 즉 유니떼 다비따시옹(Unite d'habitation)을 예고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필로티 구조 위에 상자형의 노출철근콘크리트 건물棟으로 만들어진 스위스 학생관의 집합주거의 기본적인 건축개념에 대해 르 꼬르뷔제는, 25년 후에 동측 바로 옆 대지에 더 큰 규모로 새로 지은 브라질 학생관(기숙사) 설계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적용할 만큼 매우 확신에 차있었다.
학생관 저층부의 주출입홀과 유려한 곡면의 내부계단은 형태적으로 풍부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부여하고 있고, 필로티(pilotis)는 그 자체로 훌륭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가지며, 필로티 위의 주거부분은 저층부의 유연성과는 대조적으로 건축물의 전체형태가 상자모양으로 각 유니트(숙소)는 칸막이에 의해 명확하게 분할되어 있다. 그리고 이 스위스 학생관은 근대건축물에 반드시 필요했던 기술 즉, 건식구조 건설방식(dry-wall construction)과 차음(acoustic separation)에 대한 실질적인 실험실과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르 꼬르뷔제는 스위스 학생관의 공간과 형태적인 구성에서 건축적 공간과 건설 기술에 대한 그의 통찰력을 매우 균형 있게 유지하고 있다.
- 건축설계정보 참조 -


1층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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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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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é universitaire was founded in 1921 to provide accommodation and support for foreign students in Paris, with a number of residential pavilions endowed by different national communities. The pavilion adheres to Le Corbusier's 'five points of architecture', but with a number of developments since the Villa Savoye. The free façade and horizontal window have become a continuous glazed curtain wall, on the south side of the building (above). The pilotis have developed from thin columns to six massive reinforced concrete 'dog-bones' or 'thighs' with their characteristic figure-of-eight cross section to withstand winds. While the client accepted the student rooms being raised in mid air, the public spaces were required to be on the ground. The plan accommodates them in a separate block sitting on the earth, its curvaceous form contrasting with the simple slab of the student accommodation.
(text from
www.galinsky.com)

http://www.mimoa.eu/projects/France/Paris/Pavillon%20Suisse

http://www.fondationsuisse.fr/

http://www.paris-architecture.info/PA-072.htm


The Pavillon Suisse or Swiss pavilion was built in 1930 at the Cité International Universitaire, Paris.
The construction of this Pavilion was entrusted, without a competition, by the Committee of Swiss Universities to Le Corbusier and Pierre Jeanneret who at first refused to be charged with this commission. The manner in which their cause was handled by the Swiss federal authorities and the majority of Swiss public opinion at the time of the League of Nations Competition still lay heavy on their hearts. Nevertheless, at the insistence of the Swiss universities, they threw themselves into the work and built the pavilion with a budget reputed by the president of the Cité Universitaire to be only half-sufficient (3,000,000.00 fr.)
The construction of building, created under exceptionally difficult circumstances, provided the occasion for constituting a veritable laboratory of modern architecture: the most urgent were tackled, in particular, dry-wall construction and acoustic separation.

The most famous architect of the 20th-century, Le Corbusier completed not even 60 buildings in his lifetime. But he continues to inspire both worship and loathing around the globe. Swiss by birth, Corbu is the man who coined the term “a machine for living”—which is what he expected from a successful house. He believed that mathematics contained an ideal formula for living, and the Swiss Pavilion is a magnificent example of Corbu working at the height of his power. The 30s saw Corbu formulate many of his most influential theories; his most exciting writings on art, architecture, and urban planning appeared during this period. Here, Corbu worked in collaboration with his cousin Pierre Jeanneret to create a perfect expression of his theory of four ruling elements: sky, trees, concrete and steel. His trademark brutalist materials and his love for rooftop greenery are both beautifully in evidence here. In later buildings, Corbu expanded on these concepts, but the Swiss Pavilion remains one of the most livable residential blocks the master every completed. The dormitory is an elegant, low-rise version of Corbu’s vision of high-density habitation. He dreamed of a city where streets were ignored, parks were essential, and huge high-rises boasted rooftop gardens: the Cité Universitaire was in these ways perfect for his plan. The Swiss Pavilion directs its glazed front south towards the sun, overlooking playing fields. Along the rooftop there are light and air wells, allowing students to sunbathe in privacy, and giving them a garden terrace with potted plants. Down at ground level, visible pilings support the building, which seems to float over a glass-walled lounge area. The stairs of the building are concealed in the curved back section, which is a well-balanced contrast to the 90-degree angles of the dormitory rooms. As you admire Corbu’s deceptively simple plan, consider that this masterpiece was built when many Parisian architects were still flailing around in the turgid remains of Haussman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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